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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Oct 28. 2022

엄마, 나 오늘 열 개 화났어!

아이의 감정 읽어주기 

S: 엄마, 나 오늘 열 개 화났어!


 잠자리에 누운 소은이가 머릿속으로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는다. 그리고 화가 났던 횟수를 꼽더니 화가 열 개나 났다고 말했다. 나는 '그럴 땐 열 번 화났다고 말하는 거야.'라고 고쳐줄까 하다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보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열 번이나 화가 났는지 듣는 게 더 먼저인 것 같았다. 


M: 어머, 소은이 왜 화가 열 개나 났어? 엄마한테 말해줄래? 엄마가 들어줄게.


 소은이가 화가 난 이유는 다양했다. 유치원 오빠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해서, 엄마가 아까 젤리를 주지 않아서, 유치원 친구랑 놀이터에서 놀지 못해서,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할머니 집에 못 가서 등.


  예전에는 화가 나면 울기부터 했던 아이가 화가 난 개수를 조목조목 따져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회상해서 정리하는 걸 보며 부쩍 아이가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려서 짜증이 난 아이는 결국 화가 난 이유를 다 말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자신의 감정을 읽어주는 엄마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감정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었을 테니까.  


 다음 날, 유치원 등원 준비로 바쁜 아침. 셔틀버스를 타려면 빨리 나가야 하는데 소은이가 갑자기 머리띠를 찾는다. 라푼젤 머리띠를 유치원에 하고 가겠다며, 고집을 부리기 시작해서 나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 머리띠를 찾으러 다시 들어가는 순간 유치원 버스를 놓치고 말 것이다.


M: 소은아,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라푼젤 머리띠를 찾을 수 없어. 그리고 라푼젤 머리띠는 유치원에 가져가지 않기로 했잖아.

S: 엄마, 나 한 개 화났어!


 그래도 나는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소은이가 이번에는 엄마가 묶어준 양갈래 머리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머리를 풀어달라고 요구한다.

"그럼 밥 먹을 때 머리가 다 내려오잖아. 그냥 묶고 있자."

라고 말하자 소은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러더니 씩씩대며 외쳤다.


S: 엄마, 나 두 개 화났어!

 

 나는 아차 싶어서 머리를 풀러 주며 말했다. 


M: 우리 소은이가 머리를 풀고 싶은데 엄마가 마음을 몰라줘서 많이 속상했구나?  알겠어. 엄마는 네가 머리를 묶는 게 활동하기에 더 편할 것 같아서 그랬지. 그럼 머리 풀어줄 테니 밥 먹을 때는 선생님께 묶어 달라고 해. 이제 화 한 개는 풀렸어?

S: 응, 알겠어. 이제 한 개 풀렸어.

M: 그리고, 라푼젤 머리띠는 유치원 갔다 와서 집에 와서 꼭 하고 놀자. 이제 나머지 화도 다 풀렸을까?

S: 응, 꼭이야.


 생각해보면 머리를 묶는 게 아이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강요할 것은 아니지 싶었다. 또 이제 아이는 자신의 머리스타일은 자신이 결정하고 싶을 만큼 컸구나 싶어서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주고 싶었다. 반면 안 되는 일은 아무리 아이가 화가 나도 들어줄 수 없다. 대신 화난 감정을 빨리 추스르고 전환할 수 있도록 엄마가 도와줄 수는 있다. 부정적인 감정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하고, 그걸 해소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엄마의 몫.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고 그때 그때 표현한다는 건 반가웠지만, 될 수 있는 한 소은이의 마음에 화가 쌓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니까. 

    

 어느덧 유치원 버스가 왔다. 친구들이 안전벨트를 매는 동안 소은이와 나는 서로에게 등원 세리머니 4종 세트를 보낸다. 머리 위로 큰 하트 그리기, 양손으로 작은 하트 그리기, 손키스 보내기, 마지막에는 파이팅 동작의 순서로. 이렇게 네 개의 동작을 차가 출발할 때까지 둘 다 무한 반복한다. 이 4종 세트는 엄마와 딸이 아침에 헤어지면서 서로가 잘 지내길 바라는 우리만의 의식이다. 그런데 어떤 날은 너무 시간이 없어서, 또 어떤 날은 소은이가 나에게 토라져서 이 세리머니를 하지 못하고 가는 날도 있다. 한 번은 나에게 토라져서 고개를 아예 돌리고, 엄마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가는 모습에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는지.


 오늘 아침 화가 두 개 났던 소은이는 어느새 화가 다 풀렸는지 열심히 하트를 그리며 나를 보고 웃어주었다. 나는 유치원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며 아이를 배웅했다. 오늘도 아이의 하루가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혹시라도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스스로 그 감정을 알아채고 조절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Photo by Oleg Illariono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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