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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Oct 22. 2022

엄마, 우리 밥 먹고 데이트할까?

식탁 위에서 펼쳐지는 도란도란 이야기

 아이가 다섯 살이 되니 못하는 말이 없다. 때론 당돌하고, 때론 야무지고, 어땐 연극배우처럼 과장된 말과 행동으로 나를 웃게 하기도 한다. 특히 식탁 위에서 밥을 먹을 때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날 식탁에 차려진 샐러드 속에 계란과 메추리알을 보고 아이가 내게 물었다.


S: 엄마 계란이랑 메추리알이랑 왜 달라?

M: 계란은 닭의 알이고 메추리알은 메추리라는 새의 알이야.

S: 그런데 알 속에 새는 어디 있어? 왜 새가 없어?


 곤란한 질문이었다. 우리가 먹어 버려서 새가 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지나치게 솔직할 필요는 없기에 적당히 말로 둘러대었다.


M: 닭이랑 새가 알을 낳으면 그 알에서 새끼가 태어나는데 못 태어나면 계란이 되어 우리가 먹는 거야.

S: 불쌍해. 내가 알을 돌봐줘야겠다. 먹지 말고.


 그러고서는 바로 삶은 계란을 한 입 베어 물더니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렇게 호들갑을 떤다.


S: 어떡해! 내가 알을 삼켜버렸어!


 불쌍하다고 혹시 계란을 안 먹으면 어쩌나 생각한 건 엄마의 괜한 걱정이었다. 계란뿐이 아니다. 생선이나 조개를 보며 불쌍하다고 연민의 눈길을 보내다가도, 눈앞에 차려지면 천진난만하게 잘도 먹는다.


 한 번은 유치원에 가기 전에 밥 대신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주었더니

S: 유치원 가기 전에 왜 이런 것만 주고 밥을 안 줘?

하고 할머니 같은 소리를 한다.

M: 밥 주면 잘 먹고 갈 거야?

라고 물으니

S: 응, 생선 요리해주면 잘 먹을 거야.

하며 빙긋이 웃는다. 전쟁 같이 바쁜 아침 시간에 생선구이라니. 이럴 때 보면 내가 낳은 아이인데 나와 달리 능글맞기도 하고, 능청스럽기도 하다.

 

 어느 날은 밥 속에 든 렌틸콩을 보고

S: 엄마, 이거 콩 같은데?

하며 의구심이 가득 찬 눈길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M: 응? 이거 이름은 렌틸이야. 맛있어, 먹어봐.

라고 말했다. 콩이 아니라고는 안 했으니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자 소은이는

S: 렌틸?

하면서 갸웃하더니 콩이 아닌 줄 알고 렌틸콩을 많이도 집어먹었다. 나는 아이가 너무 웃겨서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이번 대화는 내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소은이는 편식 없이 골고루 먹는 편이지만 콩이라고 하면 질색을 하고 골라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 날 또다시 렌틸콩이 든 밥을 마주한 소은이가 하는 말.


S: 엄마, 이거 사실은 콩이잖아. 나 콩 되게 잘 먹지?

 그러면서 보란 듯이 렌틸콩만 집어 먹는 게 아닌가. 소은이는 렌틸이 콩인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속아주는 연기를 했던 것이다. 아아, 이 다섯 살 꼬맹이는 이미 엄마 머리 꼭대기 위에 앉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오물오물 밥을 먹다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게 건넨다.


S: 엄마, 우리 밥 먹고 데이트할까?

M: 오, 데이트? 그래, 좋아. 근데 소은아. 데이트가 뭔지 알아?

S: 데이트가 뭔데? 음...  주스 마시는 거지. 맞지?

M: 맞아, 사랑하는 사람끼리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데이트라고 하지.

S: 그럼 우리 이제 밥 다 먹었으니까 이제 데이트하자. 엄마는 어떤 주스 먹을 거야? 난 요구르트, 엄마는 술?

M: 엄마는 술 못 먹어.

S: 그럼 엄마는 뭐 먹어? 물?

M: 엄마는 차.


 그렇게 소은이는 요구르트를, 나는 차를 마시며 우리만의 데이트를 즐겼다. 우리 집에는 술을 먹는 사람도 없는데 술이라는 말은 또 어디서 들었을까. 데이트가 주스 마시는 거라는 건 또 어디서 배웠고. 어쨌든 그 덕분에 소은이와 식탁에 앉아 데이트하는 기분을 내면서 즐거웠다. 평범한 식탁이, 단조롭게 흘러갈법한 일상이 소은이 인해 다채롭고 풍성하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아이가 있는 집의 풍경일지도.


 문득 아이가 좀 더 자라, 아이와 정말 데이트를 하러 나가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았다. 소은이의 손을 잡고 쇼핑도 하고,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서점에도 가고... 그 시간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내게 또 어떤 웃음을 안겨줄까. 물론 그때가 되면 아이는 엄마와 다니는 것보다 친구들과 지내는 걸 더 좋아하겠지만.  


 얼마 전에는 무슨 말을 하다가 "근데 요즘 포도가 비싸더라."라고 중얼거리는데 그 말투와 모습이 영락없이 시장 가는 아주머니 같아서 웃음이 났다. 언젠가 소은이도 나이를 먹고, 아주머니가 되면, 정말로 포도가 비싸다고 투덜대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 평범하고도 소박한 일상을 꿈꾸며, 오늘도 나는 아이와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행복한 대화를 나눈다.   


Photo by Bozica Uglesic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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