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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Nov 16. 2022

우리 유치원 안녕

유치원을 옮기며

 개인적인 사정으로 유치원을 옮기게 되었다. 소은이는 어릴 적부터 남달리 예민했던 아이인 데다 첫 어린이집을 잘못 만나서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그때의 상처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트라우마로 남았기에 유치원을 옮기는 일은 더욱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존 유치원을 계속 다니기에는 여의치 않은 상황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여러 유치원을 찾아보고 입학 상담을 받았다. 그중 다행히 마음에 드는 유치원을 찾아 미리 소은이를 데리고 가서 유치원 환경도 둘러보고, 담임 선생님도 만나고 왔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섣불리 행동에 옮길 수가 없었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날도 저녁 식탁에서 유치원 문제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조용히 밥을 먹고 있던 소은이가 갑자기 이렇게 외쳤다.


 S: 엄마, 아빠, 나 **에 갈래!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숟가락질을 멈추고 소은이를 바라보았다.


 M: 그게 정말이야? **에 가고 싶어 졌어?

 S: 응! 나 **에 갈 거야.


 아이의 결심이 고마웠고, 그날로 유치원을 옮기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기존 유치원을 방문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상담을 받았지만, 우리의 마음과 소은이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새로 갈 유치원과 첫 등원 날짜를 잡았다. 아무래도 중간 입소다 보니, 소은이가 잘할 수 있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엄마의 걱정과 달리, 아이는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침내, 유치원을 옮기는 날, 셔틀버스가 있었지만 등원 시간은 너무 빠르고, 하원 시간은 너무 늦었다. 당분간은 내가 아이를 직접 차로 데려다 주기로 하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우리 집에서 새로운 유치원 사이에는 기존 유치원이 있었다. 차 안에서 유치원을 발견한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S: 우리 유치원 안녕, 미안하지만 우린 새로운 유치원에 가야 해.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조금 놀랍고, 한편으론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 낯을 가리고, 예민한 소은이의 특성상 유치원을 옮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소은이는 생각보다 편안하게 자신에게 닥친 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더 놀라운 일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서 일어났다.


 등원하고 10분도 지나지 않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소은이의 사진이 전송되었다. 사진 속 소은이는 아주 밝은 표정으로, 처음 보는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편안하고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라니! 몇 시간 뒤에는 친구들과 웃으며 밥을 먹는 사진, 체육관에서 춤을 추고 있는 사진, 강당 매트에서 친구들과 뒹굴고 있는 사진, 부채춤을 추는 사진 등이 도착했다. 친구들이 소은이를 너무 좋아해서, 서로 소은이 손을 잡겠다며 귀여운 다툼을 하기도 했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어안이 벙벙했다. 선생님은 소은이는 원래부터 여기 다녔던 아이처럼 잘 놀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사진 속 아이는 엄마인 내가 봐도 그래 보였다.


 마음 깊은 곳에서 감동이 밀려왔다. 예민한 아이라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은 부모의 기우였던 것이다. 반나절도 되지 않아 새로운 유치원에 완벽하게 적응한 소은이를 보며, 이제 더 이상 아이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마치 그동안 아이를 잘 키웠다고, 누군가에게 확인 도장을 받은 기분이었다.


 며칠 뒤 아이가 새로운 유치원에서 그려온 그림에는 이전과 변함없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소은이가 있었다.  

아이는 새로 옮긴 유치원을 좋아했고, 등원 길에 소은이를 반겨주고 안아주는 친구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며 안심이 되었다.


 소은이를 키우며 몸도 마음도 참 오랜 시간 힘들었다. 하지만 병을 얻고 나서 아이와 보낸 1년의 시간이 오히려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켰다. 나는 비록 몸은 아픈 엄마였지만, 아이를 건강하게 돌보았고, 이제 아이도 나도 회복하여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만일 내가 암을 진단받지 않고, 계속 번아웃 상태로 살았더라면, 우리 가족의 모습은 지금 어떻게 달라졌을까? 또 암을 진단받고 나서, 내가 계속 슬픔에 빠져 우울하게 지냈더라면, 아이가 이렇게 밝은 모습으로 세상에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아프고 안 아프고가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하기로 마음먹는 것 아닐까. 나는 엄마이고, 누구보다 내 아이를 사랑한다. 아이에게는 내가 암환자이든, 아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내가 지금, 여기, 오늘 이 순간에 아이와 함께 숨 쉬고 살아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세상의 모든 아픈 부모도 이런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아픈 엄마라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아픈 자신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엄마, 아빠가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 세상 최고의 엄마, 아빠이니까. 나의 삶이 다할 때까지 아이를 마음껏 사랑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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