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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Nov 28. 2022

엄마를 셀 수 없이 많이 사랑해

엄마의 결혼반지 

 주말에 소은이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어린이집에서부터 지금까지 유치원을 함께 다닌 친한 친구지만 둘이 워낙 취향이 비슷한 지라 사소한 걸로 계속 부딪다. 그림을 그려도 꼭 같은 색깔 색연필을 쓰고 싶어 했고, 장난감 갖고 놀도 꼭 같은 걸 하고 싶어 했다. 입고 싶은 옷도, 하다 못해 컵이랑 숟가락까지도 취향이 갔다 보니 서로 하겠다고 다투기 일쑤. 그렇게 하루 종일 몇 번을 울고 토라지고, 화해하고를 반복했을까. 저녁이 되어 친구가 집에 간 후 소은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S: (손가락으로 수를 세며) 나 엄마한테 오늘 하나, 둘, 셋, 넷... 아홉 개 화났어.

M: 어머, 우리 소은이 뭐가 그렇게 화가 났어?

S: 마가 다인이 편만 들어서.

M: 아니야 소은아. 오해야. 엄마는 우리 소은이 편인걸?

S:  다인이 없을 때만 소은이 편이야?

M: 아니야. 엄마는 항상 소은이 편이야. 소은이를 세에서 가장 사랑해.


  딴에는 엄마가 다툴 때마다 친구 편을 들어준 것 같아서 서운했나 보다. 녀석, 그래서 아까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걸까. 나는 소은이가 안쓰러워 소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S: 엄마, 나 오늘 엄마에게 아홉 개 화났지만 엄마를 셀 수 없이 많이 사랑해.

M: 어머 정말?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해서 아이를 꼭 껴안아주었다.


S: 엄마는 나 얼만큼 사랑해?

M: 엄마는 소은이를 하늘, 땅만큼 우주만큼 사랑하지.

S: 나도 엄마 하늘, 땅만큼 우주만큼 사랑해. 천백 개 사랑해.


   없이 사랑한다더니 아이가 셀  있는 가장 큰 수 천백 개였던 걸까. 천백 개의 사랑은 대체 얼마만큼일까. 천백 개의 하트를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우주만큼 사랑한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말보다 소은이가 말한 천백 개의 사랑이 내 마음에도 더  와닿았다.


S: 엄마 내스물다섯 살이 되면 엄마가 할머 되는 거야?


  하필  스물다섯인지 모르으나 아이의 갑작스러운 질문 덕에 소한 20년이 더 있어야 내가 할머니 다는 사이 실감 났다. 


M: 아니, 무조건 스물다섯이 면 할머니 되는 게 아니라 소은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엄마가 할머니가 되는 거야. 그 아이가 엄마를 할머니라고 하는 거거든.

S: 그래? 그럼 나 빨리 결혼할래.

M: 말?

S: , 그럼 엄마가 나한테도 예쁜 반지 줄 거잖아. 그렇지?

 

 아뿔싸. 소은이는 며칠 전 내가 보여 우리 부부의 결혼반지와 내가 시어머니께 받은 반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아이가 태어난 이후 모든 액세서리를 빼고 살다가 어제 처음으로 결혼반지를 꺼내 소은이에게 보여주고 남편과 나눠 끼었더니 소은이가 볼멘소리로 내게 말했다.


S: 엄마, 우린 가족이잖아. 가족은 좋 거 나 하는 거잖아. 그런데 나만 왜 반지가 없어? 나도 반지 줘야지.

M: 걱정하지 마. 소은이가 나중에 커서 결혼하면 엄마가 꼭 반지 게. 지금은 소은이에게 너무 커서 이 반지는 맞지 않아.  

S: 할머니 것도?

M: , 할머니 것도 소은이한테 물려줄게. 


 소은이는 나의 결혼반지를 자기 손가락에 껴보고 해맑게 웃었다. 장난감 반지가 수없이 많으면서도

엄마, 아빠처럼 진짜 반지가 갖고 싶은 아이.


 나는 소은이와 대화를 나누며 딸아이의 말처럼 소은이가 빨리 결혼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되도록 이른 나이에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 왠지 내 마음이 더 편해질 것 같아서. 아픈 엄마의 걱정과 사심이 들어간 소망이랄까.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혹시라도 만에 하나 먼 훗날 내가 아이 곁을 떠나게 되어도 아이에게 의지할 수 있는 남편이 있다면 혼자인 것보다 훨씬 나을 테니까. 내가 세상에 없어져도 나보다 더 소은이를 사랑할 사람, 아빠처럼 좋은 남자가 딸아이 곁에 있다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다섯 살 밖에 안된 꼬맹이를 두고 신랑감을 생각하는 게 웃기기도 하지만 소은이는 벌써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바로 다섯 살부터 지금까지 같이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오빠. 언젠부턴가 "나 지호 오빠랑 결혼할 거야."라고 수줍게 말하더니 어느 날은 유치원에서 오빠와 함께 있는 그림을 그려왔다. 하트 안에는 지호 오빠와 소은이가 있고, 종이에는 "권지호 오빠, 사랑해."라고 적혀있었다.  


 벌써 엄마, 아빠 말고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니. 귀여운 꼬맹이의 로맨스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지만 나는 소은이의 사랑을 열심히 응원해줘야지.


  현실적으로 요즘 같은 시대에 스물다섯에 결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긴 하만 소은이가 만일 사랑하는 남자를 데리고 오고, 그 남자가 괜찮다면 딸아이가 이른 나이에 결혼하는 것도 반대하지 않으리. 그리고 소은이가 결혼을 한다고 하면 아이의 손가락에 내 반지를 꼭 끼워줄 거다. 그때가 되면 오늘 소은이에게 엄마의 반지를 주겠다고 한 약속을 아이는 기억하지 못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아이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엄마를 셀 수 없이 많이 사랑하는 아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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