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주에 실시한 6개월 검진 결과를 듣고, 졸라덱스 3회 차 주사를 맞는 날이다. 벌써 주치의와는 여덟 번째 만남 이건만 이 만남은 횟수가 늘어나도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미리 질문 리스트를 작성하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일단 진료실에 들어가면 주치의와 인사를 하고, 진료 베드에 누워 바로 유방 촉진을 받게 된다. 촉진이란 의사가 환자의 몸을 손으로 만져서 진단하는 일이다. 나는 촉진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림프 부종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았다. 최근 필라테스를 너무 열심히 한 탓에 수술한 부위가 당기고, 겨드랑이가 아팠기 때문이다. 혹시나 림프 부종이 오면 어쩌지? 잘못된 동작을 한 것은 아닐까? 당장 림프 마사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며칠 동안 나는 다시 걱정병 환자가 되고 말았다. 이럴 땐 의사의 괜찮다는 답변만이 살 길이다. 다행히 주치의는 팔과 어깨 여기저기를 만져보고 반대편 팔도 살펴보더니 괜찮다는 답변을 해주었다. 그리고 유방암 환자는 아무래도 필라테스보다는 요가를 하며 스트레칭 위주로 운동할 것을 추천해주셨고 림프 마사지는 해도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드디어 정기 검진 결과를 듣게 되는 순간! 주치의는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아무렇지 않은 듯 "괜찮아요." 한 마디를 날린다. 미소는 덤이다. 정녕 이게 끝인가? 이건 5분도 아니고 5초 만에 진료가 끝날 분위기. 나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재빨리 복부 초음파 결과를 물었다. 얼마 전 남편 회사에서 해준 건강 검진 결과에는 담낭 결석의 사이즈가 커져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담낭 결석 사이즈가 커졌는데 괜찮은가요?"
"결석? 음.. 두 개 다 1cm가 넘네요.. 사실 이건 수술밖에 답이 없어요."(이때부터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 시작한다.)
"수술이요? 암과는 연관이 없는 거죠?"
"직접적으로 연관은 없지만, 결석이 커져서 담낭 벽을 자극하면 염증이 생겨 암이 생길 수 있죠. 외과 진료 잡아드릴게요"
"신장에도 낭종이 하나 있는 게 그건 괜찮은가요?"
"그건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결국 외과 협진을 잡고 진료실을 나왔다. 검진 통과를 기뻐하기에는 뭔가 애매한 성적표. 교수님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답변 덕분에 신장 낭종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고 담석이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겨우 한 숨 돌렸는데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니. 한숨이 나온다. 담석이 한 개도 아니고 두 개. 게다가 사이즈가 커지고 있다. '담석증'이라. 이제 비로소 유방암에 좀 익숙해졌는데 새로운 질병을 마주하려니 기분이 착잡했다. 물론 담석은 1년 전에도 내 몸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때의 마음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암환자가 아니었으니까. 몸에 담석이 있다는 걸 알고도 특별한 증상이 없었기에 추가 진료조차 받지 않았다. 건강한 사람에게 담석은 그리 심각한 질병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데 암환자가 되고 나니 상황이 달라졌다. 염증이 생기는 상황 자체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기에 가벼운 질병일지라도 조심해야 했다. 더군다나 수술이라면 아무리 쉬운 수술이라 해도 내 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모르니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담석 사이즈가 더 크기 전에 내과든 외과든 적극적으로 가볼걸!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내 몸의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도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교수님이 직접 협진을 잡아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료까지는 3주 정도 기다려야 했다. 역시 대학병원엔 아픈 사람이 참 많다. 또다시 기다림의 연속이구나.
나는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인터넷에 '담낭 결석'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암도 치료했는데, 이까짓 돌멩이로 우울해하지 말자! 마음을 다잡아보며. 하지만 내 몸에 있는 돌멩이 두 개 때문에 6개월 검진 통과라는 기쁜 소식을 만끽할 수가 없다니. 그게 나를 가장 우울하게 만들었다.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병원 1층 로비에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이 눈에 띄었다. 올해 처음 보는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벌써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구나. 예쁜 트리 장식을 보니 어느새 마음이 한층 밝아졌다.
'그래, 일단 암 검진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지!'
나는 반짝이는 전구 장식을 바라보며 내 마음의 전등에도 희망의 불을 켰다. 앞으로 살면서 여기저기 아플 날이 얼마나 많을까.그 때마다 우울해할 순 없다. 또 이 세상에는 나보다 아프고 힘든 사람도 얼마나 많은가. 나는 내게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행복하게 맞이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