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는 수술을 하고 중증 적용을 받는 5년 동안 6개월마다 정기 검진을 받는다. 1년에 한 번씩 건강 검진을 받을까 말까 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6개월의 시간은 짧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환자에게 있어 6개월은 결코 짧지 않다. 그 사이 혹시라도 전이가 있을까 늘 불안하고 겁이 난다. 나 또한 수술 후 대상 포진을 겪으며 뼈 전이의 공포를 맛보았고, 뼈 전이는 본스캔(뼈 검사) 외에는 알 방법이 없다는 말에 주치의에게 6개월 단위로 본스캔을 해달라 조르기도 했다. 그러나 주치의는 단호히 거절했고 내가 하게 될 검사는 혈액 검사, X선 유방 촬영 검사, 상복부 초음파 검사, 유방 액와 초음파, CT가슴 저선량 검사 이렇게 5개라는 안내를 받았다.
하루 종일 잡힌 검사 예약 일정
검사 종류는 병원마다, 그리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우리 병원은 보통 저렇게 5개의 검사가 첫 정기 검진에서 이뤄지는 듯했다. 앞의 4가지 검사는 기존에 해 봤던 것들인데 'CT가슴 저선량 검사'라는 생소한 검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CT가슴 저선량 검사란? CT는 인체에 X-선을 투과한 후, 그 흡수 차이를 컴퓨터로 재구성해 영상을 얻는 검사이다. 저선량 CT는 일반적인 CT보다 방사선 노출량이 약 75%까지 감소되어 검사가 가능한 CT촬영이다. 방사선 방출량이 적기 때문에 비교적 방사선 피폭의 우려를 덜 수 있고 조영제와 금식이 필요 없는 검사이다. 폐암의 조기 발견과 조기 진단을 위해 실시한다.
결국 6개월 검진은 유방암 재발과 폐암의 전이를 발견하기 위한 검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상복부 초음파를 통해 상복부에 위치한 간, 담낭, 담도, 췌장, 비장을 초음파로 평가받는다.
검사를 받는 날, 두 달 만에 병원에 가는 발걸음은 다소 가벼웠다. 한 달 전에 검진 센터에서 미리 예행연습을 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남편의 회사에서는 1년에 한 번씩 건강 검진을 무료로 해주었고, 그 결과가 며칠 전 나왔는데 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병원에 다시 오니 기분이 얼떨떨했다. 방사선 치료 때 매일 병원으로 출퇴근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표준 치료가 끝나고, 이렇게 정기 검진 때만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가 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검사는 아침 10시에 시작해서 저녁 7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병원에서 9시간 이상을 보낸 셈이다. 검사 사이사이 남편과 병원 내 커피숍에서 책도 읽고, 정원에서 산책을 했다. 점심 때는 가까운 안과에 가서 안과 검진을 받고, 근처 맛집을 찾아 값비싼 한정식도 먹었다. 6개월 검진을 맞이하는 나에게 주는 일종의 선물이랄까.
그렇게 하루 종일을 병원에서 보내고, 깜깜한 밤이 되어야 비로소 모든 검사가 끝이 났다. 낮 동안 그렇게 많던 환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텅 빈 병원은 조용하고 고요했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밖으로 나오자 시원하고 상쾌한 밤공기가 기분을 전환시켰다. 남편의 손을 잡고 언덕 위에 있는 야외 주차장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화려한 조명이 반짝이는 병원 건물이 마치 여행지의 리조트처럼 예쁘게 보였다. 이곳이 병원이 아니라 산속에 있는 리조트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하는 남편도 옆에 있고, 가을밤 공기도 선선하고 좋은데. 비록 지금 발 딛고 있는 이곳이 내가 원하는 아름다운 휴양지는 아니지만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에 쉼표를 찍고, 더 건강한 삶으로 가기 위해 쉬어가는 휴게소 정도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하고 가벼워졌다. 이제 검진 결과가 나오기까지 열흘이란 시간이 남았다. 나는 열흘 뒤 웃으며 이 길을 다시 걸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소은이가 기다리는 우리집, 나의 현실로 돌아오는 차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