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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의 마음

남편과 나의 역할이 바뀐 날.

by 강진경

오늘은 남편의 수면 내시경이 있는 날. 줄곧 환자였던 내가 오늘은 보호자로 병원에 왔다. 6개월 동안 병원에서 환자 역할을 하던 내가 보호자가 되어 대기실에 앉아있다. 남편과 입장이 바뀌니 기분이 이상하고 묘했다. 가운을 입고 들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제껏 남편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만감이 교차했다. 불안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괜찮을 거야.' 스스로를 다독여보기도 한다. 그렇게 우두커니 앉아 남편을 기다리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남편도 어디가 크게 아픈 거라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하지? 내가 아픈데 남편까지 잘못되면 우리 가정이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그동안 남편이 우리 가족의 기둥이고 큰 버팀목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남편은 오래전부터 오른쪽 하복부에 통증을 호소해왔다. 건강검진에서도 특별한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고, 동네 병원에서 다시 한번 초음파를 하고, 복부 CT를 찍어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남편의 통증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쯤 되니 남편은 검사를 하고 뭐라도 나왔으면 하는 심정이 되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럴까.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치료도 불가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는 사이, 남편의 복직이 결정되었다. 나의 표준치료도 끝이 났고, 소은이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상황이라 예정보다 일찍 복직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날은 남편이 복직을 당겨하겠다고 말하기 위해 회사에 간 날이었다. 회사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헤어졌는데 문득 회사 근처에 다녔던 비뇨기과가 눈에 보였다고 한다. 얼마 전 동네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대학병원 비뇨기과로 가보라며 진료 의뢰서를 써주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회사 근처 비뇨기과에서 진료를 다시 보았고, 의사는 비뇨기과가 아니라 내과로 가야 한다며 진료 의뢰서를 다시 써주었다. 그뿐 아니라 대학병원 교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진료 예약을 잡아주었다. 이렇게 의사가 직접 상급 병원에 진료를 요청하는 협진 시스템이 있었다니. 적극적으로 처치를 해준 의사에게 무척 고마웠다. 덕분에 환자가 예약을 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예약이 되어 남편은 한 시간 후 바로 대학병원 진료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남편이 보내준 예약 문자에 암센터 내과가 눈에 들어왔다.


'암센터라고?'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일반 내과가 아니라 암센터를 가지? 두근두근 심장이 엄청나게 빨리 뛰었다. 당장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암이 의심이 되어 암센터를 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진료가 연결된 곳이 내과인데 내과가 암센터 안에 있다는 설명이었다. 내가 알기로 암센터와 일반 진료는 따로 있는데..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은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로 했다. 병원마다 시스템이 다른 것이겠지. 암환자가 되고 나니, 주변에 누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무섭고, 암이라는 글자만 봐도 두려웠다.


진료를 보고 나온 남편은 다음 주에 대장 내시경과 복부 CT가 예약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결과를 듣는 진료까지 예약이 잡혀 순식간에 2주간의 병원 스케줄이 생기고 말았다. 이로써 남편의 12월 초 복직 계획은 반나절도 되지 않아 물거품이 되었다. 인생은 늘 우리가 계획한 것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회사에 복직 시기를 앞당긴다고 의사를 전달했을 뿐, 정확한 날짜를 밝히지 않고 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남편의 복직 날짜가 한 달가량 미뤄지면서 나에게도 남편과 보낼 수 있는 한 달의 유예 시간이 늘어났다. 어떻게 하면 이 소중한 시간을 뜻깊게 보낼 수 있을까? 그동안 나를 보살피느라 휴직을 했어도 정작 자신만의 시간은 가져보지도 못한 불쌍한 남편에게 이 한 달이라는 시간이 의미 있게 쓰이길 바랐다. 그리고 부디 검사 결과가 좋게 나와서 앞으로 내가 남편의 보호자가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오늘 짧은 시간이었지만 보호자가 되고 나니 환자의 힘듦과는 별개로 보호자가 감내해야 할 또 다른 무게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동안 나의 보호자로서 힘들었을 남편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부디 남편이 건강하기를, 큰 병은 아니지만 통증의 원인이 밝혀져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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