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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Mar 03. 2022

잇츠 해피!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하다.

 오늘은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하는 날이다. 이 날을 소은이도 나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2월생이라 생일이 빠른 소은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발달이 빠른 편이라 얼른 유치원에 가고 싶어 했다. 유치원이 결정된 순간부터 유치원 앞을 지날 때마다 '엄마, 저기가 내가 갈 유치원이야.'하고 노래를 부를 정도로 유치원에 대한 열망이 컸다. 유치원 입학설명회에 간 것이 11월이었으니 꼬박 4개월을 기다린 셈이다. 그 사이 여러 가지 행사를 통해 유치원을 몇 번 방문하기도 하고, 유치원 선생님들이 집 앞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유치원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더욱 커져갔다.


 작년 겨울, 크리스마스 때 유치원 선생님들이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반짝 공연을 해주신 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들이 타고 오신 노란 유치원 셔틀버스를 보고 소은이의 눈이 반짝였다.


S: 엄마, 나도 이제 노란 버스 타고 유치원 가는 거예요?

M: 응, 소은이도 이제 노란 버스 타고 유치원 다닐 거야!

S: 우와, 진짜 진짜 신난다!

 

 한 번도 버스를 타보지 못했던 소은이는 유치원 버스를 타는 것이 신나는 모양이었다. 그 뒤로 길에서 노란 봉고차만 보면 소은이는 '엄마, 내 유치원 버스예요!'하고 반가워했다. 차로 가면 5분 남짓, 가까운 거리에 있는 유치원이라 직접 데려다 줄까도 생각했지만 소은이가 버스를 너무 타고 싶어 했기에 결국 셔틀버스를 타고 등 하원을 하기로 했다. 아이에게는 버스를 혼자 타보는 것 자체도 새로운 경험이고, 새로운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항상 늦게 일어나 어린이집에 늦게 가던 습관을 고치려면 약속된 시간에 정해진 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행위가 필요했다.


M: 소은아, 유치원 버스는 늦으면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대. 꼭 정해진 약속 시간에 나가야 해. 그러려면 이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해.

S: 응! 알았어, 엄마! 우리 꼭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자.


 며칠 동안 계속 소은이에게 이렇게 얘기를 해주었고, 마침내 오늘 소은이는 약속대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유치원 갈 준비를 했다. 엄마도 소은이도 설레고 긴장되는 아침이었다. 나는 아침을 먹으며 소은이에게 물었다.


 M: 소은아, 오늘 유치원 가는 기분이 어때?

 S: 음.. 잇츠 해피!!

 

 잇츠 해피? '아임 해피'도 아니고 '잇츠 해피'라니! 소은이는 정말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외쳤다. 나는 소은이가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소은이에게 유치원에 가는 일이 단어 그대로 '행복' 그 자체인 것 같아 기쁘고 대견했다. 1년 반 전, 어린이집에 입소할 때와 비교하면 정말 눈부신 성장이었다. 1년 반 만에 이렇게 변할 수 있다니. 어린이집을 졸업할 때 담임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소은이는 반에서 가장 변화가 컸던 아이예요.
처음에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정말 많이 좋아지고 달라졌어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아이의 첫 사회생활이었던 첫 번째 어린이집은 우리 가정에 큰 상처를 남겼다. 적응 기간, 새로운 환경이 낯설고 두려운 아이에게 어린이집 담임교사가 정서적 학대를 가했고 그 일이 아이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 후 아이는 분리 불안이 생겨 다른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도, 나도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무려 반년을 고생했다. 결국 그 일을 겪고 나는 유방암을 진단받았다. 그랬기에 유치원이라는 새로운 환경 변화는 나에게는 남들보다 더 두렵고 긴장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유치원 선택에 정성과 심혈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소은이가 한 치의 걱정과 불안도 없이 '잇츠 해피'라고 외쳐 주니 그 안도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소은이와 나는 미리 나가서 유치원 버스를 기다렸다. 노란색 버스를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은 같았을 것이다. 콩닥콩닥, 두근두근, 설레고 떨리고 긴장되는 시간. 나는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소은이에게 말을 걸었다.


M: 소은아, 유치원 잘 다녀와. 엄마가 여기서 소은이 기다리고 있을게.

S: 우와, 신난다. 그럼 나 콩순이처럼 '엄~~ 마!'하고 뛰어갈 거야.


 아, 그런 것이구나. 그러고 보니 호비도, 콩순이도, 모두 노란색 유치원 버스를 타는구나. 소은이에게는 유치원 버스가 어쩌면 유치원을 대신하는 상징 같은 것일지도. 오매불망 바라던 형님이 되어 유치원에 가는 것이 아이에게는 자랑스럽고 뿌듯한 일이었다. 그리고 어린이집과 달리 유치원은 혼자서 씩씩하게 버스를 타고 간다는 것이 아이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M: 소은아, 혹시 유치원에서 엄마가 보고 싶으면 이거 먹어.


나는 소은이의 작은 손바닥에 손가락 하트를 그려주었다. 오래전부터 해오던 소은이와 나만의 약속이었다. 손가락에 하트를 그려주면 소은이가 먹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 엄마의 사랑이 소은이 몸속으로 들어가 소은이를 지켜준다는 설정이었다.


S: 엄마, 이쪽도 그려주세요.


나는 양 손바닥 가득 정성스럽게 하트를 그려주었다. 소은이도 내 손바닥에 하트를 그려주었다. 이윽고 유치원 버스가 도착했다.


 나와 떨어져 처음으로 차를 타보는 아이. 자리에 앉아 벨트를 매고 내게 손을 흔들며, 하트 손가락을 만드는 아이를 보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이제 더 이상 내 품에 아이가 아닌 것 같아서, 어느덧 이렇게 자란 딸아이가 대견하고 고마워 마음이 뭉클했다. 나는 애써 눈물을 삼키며 열심히 손을 흔들어보았다. 그리고 이내 버스가 출발하자 눈물이 쏟아졌다. 다섯 살 딸아이가 세상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갔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유치원을 보내는 내 마음도 이러할진대, 초등학교를 보내는 엄마들의 마음은 어떨까. 그리고 문득 친정 엄마 생각이 났다. 내가 처음 기관에 갔을 때, 엄마 혼자 남겨졌을 때, 엄마도 이런 기분이셨을까?


 그토록 기다리던 자유와 해방의 시간이 왔는데 나의 발길은 집이 아니라 유치원으로 향해있었다. 차가 나의 발걸음보다 빠르니, 나보다 아이가 먼저 도착하겠지만 왠지 유치원에 가서 문이라도 보고 와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터덜터덜 유치원을 향해 가고 있는데 유치원에 다 와갈 무렵 낯익은 노란 버스가 내 옆을 스쳐 지났다. 그리고 핑크색 옷을 입은 딸아이가 보였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나는 나무 뒤에 몰래 숨어 소은이가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소은이는 차에서 내려 씩씩하게 계단을 올라갔다. 선생님이 소은이의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맞아주셨고, 이내 소은이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소은이가 들어간 유치원 문 앞을 한참을 바라보다 기도를 청했다. 부디 이곳에서 아이가 행복한 유년 생활을 보낼 수 있기를. 즐거운 일들만 가득하기를. 좋은 친구들과 좋은 선생님을 만나 반짝반짝 빛나는 꿈을 키워나가길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산에 올라가 까치를 보았다. 까치는 행운을 가져다준다지. 바람은 아직 차가웠지만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따스하게 내리쬐던 날이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한 날. 비록 입학식이라는 거창한 행사도, 특별한 사건도 없지만 오늘은 아이의 인생에서, 그리고 나의 인생에서도 역사적인 순간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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