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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Feb 20. 2022

엄마, 나 사랑해?

아이와의 연애


S: 엄마, 나 사랑해?


자려고 누웠는데 뒹굴뒹굴하던 소은이가 묻는다.


M: 그럼. 엄마는 소은이를 너무 사랑해. 소은이는 엄마 아빠의 소중한 보물이야. 엄마, 아빠에게 정말 소중해.

S:  다른 친구들보다 더 소중해?

M: 응, 엄마, 아빠에게는 소은이가 가장 소중하지.

S: 가윤이는?

M: 가윤이는 가윤이 엄마에게 가장 소중하지.

S: 다인이는?

M: 다인이는 다인이 엄마에게 가장 소중해.

S: 하린이는?

M: 하린이도 하린이 엄마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이지.


 그렇게 소은이는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부르며 친구가 소중한 존재인지 확인했다.


M: 그러니까 모든 친구들이 다 소중한 거야. 친구들 엄마, 아빠에게는 그 친구가 가장 소중한 것이거든. 모든 친구들이 자기 집에서는 가장 소중한 존재야.

S; 그렇구나. 우리 모두 소중해.
M: 맞아, 그중에서 엄마에게는 우리 소은이가 가장 소중해. 소은이가 태어났을 때 엄마가 얼마나 기뻤다고.

소은이가 엄마 속에 생겼을 때는 너무 기뻐서 엉엉 울었어.

S: 기쁜데 왜 울어?

M: 원래 너무 좋으면 눈물이 나오는 거야. 슬플 때도 눈물이 나지만 너무 기쁘면 눈물이 나오거든.

S: 나도 울었어. 엄마 배 속에서.

M: 정말? 소은이는 왜?

S: 엄마 속에서 다 들었거든. 배꼽으로 들렸어.


   이 말을 듣는 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아기가 배 속에서 우리와 함께 듣고 있었다니. 정말 탯줄로 내가 우는 소리가 들렸을까?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의 몸속에서 엄마의 말을 듣고, 엄마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순간 감동하여 눈물이 나왔다. 나는 소은이 몰래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M: 소은아, 너무 감동적이야.

S: 그치? 나도 너무 감동적이야.


 소은이가 나의 볼을 손으로 감싸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가끔씩 아이와 마주 보고 누워있으면 아이가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내 볼을 감싸줄 때가 있다. 그럼 아이의 따뜻한 체온이 나에게 전해지면서 온몸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지곤 했다. 이 조그만 녀석에게서 얻는 마음의 평화와 위안.


M: 엄마, 근데 나는 슬퍼서 울었어.

M: 소은이는 왜 슬펐어?

S: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M:  속에서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울었어?

S: 응, 진짜야.


 한참을 잠 못 자며 뒤척이던 아이는 엄마에게 궁금증을 남기고 마침내 잠이 들었다. 진짜일까? 나는 잠든 소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말 아기가 엄마 배 속에서 울 수 있을까? 배 속에서 잠자는 소은이의 얼굴은 초음파로 본 적 있지만 우는 건 본 적이 없는데? 나는 잠시 배 속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떠올리며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과학적으로 엄마의 감정이 아이에게 전달되는 것은 맞으니까 소은이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태교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일 테니. 엄마가 하는 말을 듣고, 엄마의 생각과 감정을 느끼고, 엄마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태아.


 배 속 아기가 운다면 그것이야말로 마음으로 우는 것일 텐데. 엄마 배 속에서 엄마가 보고 싶어 울었다는 아이의 말에 나는 가슴이 먹먹하여 한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아이가 엄마에게 주는 사랑, 엄마를 향하는 아이의 사랑은 어쩌면 부모가 주는 사랑보다 더 일방적이고 더 깊구나. 우리는 부모가 자식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지만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어린 아기들과 아이들에게 부모는 세상 그 전부나 마찬가지이니까. 부모는 이 시기에 아이들에게 받은 사랑을 평생 동안 조금씩 돌려주면서 사는 건지도 모른다.


 아이를 재울 때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사랑의 언어들을 들려주는데 그럴 때마다 소은이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S: 엄마, 나 잠들 때까지 계속 이렇게 쓰다듬어주고 계속 계속 이렇게 얘기해줘.


 아이는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마치 처음 연애를 시작한 남녀가 서로에게 그러하듯이. 내가 조금만 화를 내거나 서운하게 하면 "엄마, 나 안 사랑하지?"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난데없이 "엄마, 나 사랑해?" 하며 자꾸만 나의 사랑을 확인한다.


 '아! 소은이는 지금 나와 연애 중이구나.'


 난 아이의 마음이 처음 연애를 시작하는 남녀의 마음과 같다는 걸 알았다. 남자든 여자든 결국 상대를 더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이 애타고 간절한 법이다. 처음에는 아이가 엄마를 더 좋아하지만(너무 좋아해서 상대를 힘들게 할 수준으로) 아이가 커가면서 점점 아이는 엄마에게서 멀어질 것이다. 때론 다투고 토라지고 상처받는 날들도 오겠지. 결국 유아기는 아이의 시점으론 엄마와 사랑이 시작되는 연애 초기인 셈인데 나는 그걸 너무 간과하고 있었다.


 아이는 오매불망 엄마만 바라보는데 엄마는 항상 바쁘고 다른 일을 하느라 자신에게 집중해주지 않는다. 그럼 아이는 불안하고 속상해진다. 엄마가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진다. 엄마가 곁에 있어도 아이는 외롭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지금 아이이게 얼마나 온전한 사랑을 주고 있을까? 소은이에게 더욱 충만한 사랑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아이만 바라보고 아이에게만 집중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글도 써야 하고, 병원도 다녀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한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하면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다른 일에 신경을 쓰느라 아이를 뒷전에 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아팠다. 아이에게는 엄마를 독점했다는 만족감이 필요한 것일 텐데. 나는 여전히 너무 바쁜 엄마였구나. 그제야 아이가 나에게 했던 말들이 말풍선처럼 떠오른다.


 "엄마는 맨날 바빠."

 "힝, 엄마는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었는데 조금만 다른 일을 하려 하면 이런 말을 내뱉는 아이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연애 중인 커플에 대입을 해보니 아이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헤어질 때 아쉬운 것처럼. 아이는 엄마와 하루 종일 있어도 잠드는 게 아쉬운 것이구나.  아이에게는 엄마와 같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더 강렬하게, 더 진하게, 엄마와 사랑을 주고받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그동안 미처 몰랐다.


 소은아. 미안해. 이제 마음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더 사랑을 보여줄게. 네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만큼, 더 이상 엄마에게 사랑을 확인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엄마가 더 많이 사랑하고 아껴줄게.
사랑해, 소은아!



 

photo by Caroline Hernand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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