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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Apr 09. 2022

엄마, 저 나무들은 왜 옷을 안 입고 있어요?

겨울에 나무들이 옷을 입는 이유

 겨울 내내 외출할 때마다 소은이가 내게 던진 질문이 있다.


S:  엄마, 아기 나무들은 왜 지푸라기를 해 놓은 거야?

S:  엄마, 저 나무들은 왜 옷을 안 입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M: 아기 나무들은 어른 나무보다 더 약해서 춥지 말라고 해둔 거야.

M: 나무들 춥지 말라고 경비 아저씨가 옷을 입혀준 거야.



 그런데도 아이는 답변이 성에 차지 않은 건지, 볼 때마다 궁금증이 생기는 건지 나무들을 볼 때마다 같은 질문을 했다.


S: 엄마, 저 나무들은 왜 옷을 안 입고 있어요? 춥겠다. 우리 동네 나무들은 경비 아저씨가 다 옷 입혀줬는데

그 나무들은 좋겠다.

M: 그러게, 저 나무들은 옷을 안 입고 있네. 아마도 어른 나무인가 봐.

S: 어른 나무들은 더 힘이 세고. 아기 나무들은 귀엽고, 토끼처럼 더 가볍고 추운 거야?

M: 그렇지, 어른 나무들은 옷을 입혀 주지 않아도 견딜 수 있지만 아기 나무들은 옷을 안 입으면 추워서 안 돼.

S: 아기들처럼? 엄마도 내가 아기 때 이불로 감싸줬지?

M:  그럼, 엄마도 우리 소은이가 아기일 때는 추우니까 이불로 돌돌 싸매고 다녔지.


 아이는 차를 타고, 창 밖을 보며 나무가 보일 때마다 내게 물었다. 나무들이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왜 옷을 입고 있는지 궁금해했고, 나무들이 옷을 입고 있지 않으면 벌거벗은 나무는 춥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아이의 순수하고 예쁜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 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한 번은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마치 어른 나무처럼 보이는 키 큰 나무들이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전에 본 나무들이 지푸라기로 된 옷을 입은 것과 달리 이 나무들은 알록달록한 색깔의 실로 뜨개질한 니트 옷을 입고 있었다. 다행히 소은이는 어른 나무가 옷을 입고 있다는 것에 큰 의문점을 품지 않았지만 나는 그동안 소은이에게 해 준 나의 답변이 미흡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가 옷을 입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추워서일까? 아기 나무가 추위를 더 탄다는 나의 답변은 맞는 것일까? 어느새 나도 궁금증이 들어 집에 와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검색으로 아기 나무가 추위에 더 약한가에 대한 답은 정확히 얻지 못했지만 나무 종류에 따라 추위에 강한 나무가 있고, 약한 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를 어려운 말로 '내한성'이라 하는데 내한성이란 생물이 추위(저온)에 견디며 생존할 수 있는 성질을 뜻한다. 그리고 추위에 견디는 힘을 가진 나무의 종류를 '내한성 수종'이라 한다. 내한성이 강한 수종에는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버드나무 등이 있으며 내한성이 약한 수종에는 삼나무, 편백, 사철나무, 능소화 등이 있다고 한다. 결국 나무가 옷을 입는 이유는 내한성이 약한 수종의 월동을 위한 대책이라 볼 수 있었다.


 아, 드디어 의문이 풀리는 순간! 그럼 나무의 크기나 나이보다는 나무의 종류에 따라 추위에 약한 나무에게 옷을 입혀준다는 설명이 더 맞겠구나.


 한편 검색을 통해 나무가 옷을 입는 이유가 보온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길을 가다 보면 겨울철 나무 중간 부분에 짚으로 둘러놓은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를 '잠복소'라고 한다. 잠복소는 겨울 동안 나무에 있는 해충들이 지푸라기 속으로 들어와 추위를 피해 겨울을 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봄철에 나무에 두른 짚들을 수거하여 태움으로써 해충을 없애는 효과를 지닌다고 한다.


 '잠복소'라니.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실제로 잠복소가 효과가 있는가 하는 논란도 있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해충 예방과 보온 효과를 위해 잠복소를 설치하는 듯했다.


 그리고 잠복소 외에도 '그피티 니팅(Graffitti Knitting)'이라는 용어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나무에 지푸라기 옷이 아닌 뜨개질 니트를 입히는 것을 '그피티 니팅 '이라고 한다. 그피티 니팅은 나무나 동상, 기둥 같은 공공시설물에 털실로 뜬 덮개를 씌우는 친환경 거리예술로 2005년 미국 텍사스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졌다고 한다. 병충해 예방과 보온 효과뿐 아니라 손뜨개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따뜻한 감성으로 차가운 도시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까지 낼 수 있다. 삭막하고 메마른 지푸라기보다 알록달록한 니트를 입고 있는 나무가 더 예뻐 보이는 건 당연지사.

우리 동네 입구에 뜨개질 니트를 입은 나무들

 그래서인지 요즘 여러 지자체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피티 니팅 행사를 추진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지자체에서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작품을 공모하기도 하고, 비영리단체나 민간단체에서 자치구의 승인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대부분 재능기부와 자원봉사 형태로 뜨개질에 참여한다는 기사를 보며 누군지 모르지만 나무에 옷을 입혀주신 그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누가 우리 동네의 나무를 이렇게 예쁘게 꾸며주는지, 추위와 병충해로부터 보호하고 있는지 아무런 관심도, 호기심도 없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겨울이 다 지나가도록 이런 사실을 몰랐다니 나는 참 무관심한 시민이구나 싶다가도 소은이 덕분에 이렇게 주변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혹시 아직 잠복소나 그피티 니팅이 되어 있는 나무가 있다면 소은이에게 다시 설명을 해줘야겠다. 나무는 어른 나무여도 종류에 따라 추위에 더 약한 나무가 있어서 옷을 입는다는 것. 벌레를 잡기 위해 봄에는 나무 옷을 벗겨 불에 태운다는 것. 그리고 경비 아저씨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봉사를 하는 분들이 직접 뜨개질 옷을 만들어 나무에게 입혀준 거라고.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정성이 아이에게도 전해져 소은이가  따뜻한 감성을 지닌 사람으로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금처럼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갖고, 자연과 이웃을 돌보고 사랑할 줄 아는 어른으로 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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