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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Feb 08. 2022

엄마, 이거 손에 붙이고 있어.

 2주간의 가정보육을 끝내고 아이가 다시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시작했다. 2주 동안 집에서 엄마와 딱 달라붙어 있어서 혹시 어린이집에 안 간다고 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는데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회복했다. 이럴 땐 아이들의 회복탄력성이 참 부럽다. 어른으로 치면, 계속 쉬다가 출근하는 것이 마냥 싫을 것 같은데 아이는 안 간다고 떼 한번 쓰지 않고, 엄마와 웃으며 헤어졌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을 먹다 갑자기 배가 아프단다.


M: 응가 마려워? 응가하고 갈래?

S: 응가 문제가 아니야.


 나는 응가 문제가 아니라는 다섯 살 아이의 심오한 답변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가끔씩 어디서 저런 말을 배웠나 싶을 정도로 어른스러운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정말 궁금하다. 아이는 저런 말들을 어디서 배울까? 가끔 우리 부부가 쓰지 않는 말들이 튀어나올 때도 있다. 어린이집? 텔레비전? 궁금한 마음에 아이에게 물어보지만 아이는 그럴 때마다 딴청을 피우고 한 번도 대답한 적이 없다.


M: 그럼 왜 배가 아프지? 혹시 이따 어린이집에서 응가 마려우면 참지 말고 해야 해?

S: 응, 알았어 엄마. 그럼 내가 응가 마려우면 엄마 생각할 테니까 엄마가 병원에서 나한테 소은이 힘! 내! 라! 해줘야 해?

M: 그럼~ 소은이가 엄마를 마음으로 부르면 엄마가 멀리서도 우리 소은이를 응원할 수 있어. 그러니까 힘들 때 엄마한테 꼭 신호 보내줘.

S: 알겠어.


 집을 나서기 전 아이는 어디서 났는지 갑자기 반짝이는 은색 별 스티커를 가지고 와 내 손등에 붙여주었다. 그리고 같은 모양에 색깔만 다른 보라색 별 스티커를 자신의 손등에 붙였다.


S: 엄마 이거 손에 붙이고 있어. 이거 붙이고 있으면 엄마랑 나랑 연결되는 거야. 나도 엄마 보고 싶으면 이거 볼 테니까 엄마도 내가 보고 싶으면 이거 봐.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이거 보면 별이 엄마 얼굴로 보이는 거야.


M: 어머 정말? 신기하다. 그럼 잃어버리면 안 되겠네. 조심해야겠는걸?


 나는 혹시나 손등에 스티커가 떼어지면 아이가 울까 봐 걱정이 되었다. 손등에 붙은 스티커는 놀다가 없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한데 울고불고할 아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S: 잃어버려도 괜찮아, 손에 흡수가 되는 거야. 그래도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

M: 알겠어. 엄마도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할게. 그리고 소은이 보고 싶을 때 이거 보고 있을게.


 나는 머리를 뿅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성장해있었다. 더 이상 스티커가 없어졌다고 우는 꼬맹이가 아니었구나. 스티커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그것은 상징일 뿐, 그게 전부가 아니고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아이는 알아차린 것이다. 언제 이렇게 마음이 컸을까? 다섯 살이 되면서 요즘 부쩍 아이가 커버린 느낌이다.


 키우며 줄곧 힘들었던 아이, 한 번도 쉬운 적이 없던 아이가 이제는 조금 키울 만하게 느껴진다. 순한 아이는 100일, 보통의 아이는 돌 무렵 엄마들에게 기적이 찾아온다. 아이가 통잠을 잔다거나, 육아가 좀 쉬워질 때 엄마들이 쓰는 표현인데 나는 여태껏 그 기적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조금 예민하다 싶어도 두 돌 되면 살만하다는 친구의 이야기도 헛된 희망이었다. 세 돌 때는 어린이집 사건으로 힘듦이 극에 달했고, 네 돌을 앞둔 지금에야 '아, 이것이 사람들이 말한 기적이구나.'를 비로소 느낀다. 이제는 남들처럼 욕조에 앉아 머리도 감을 수 있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릴 수도 있다. 이 사소한 일상이 우리 아이에게는 왜 그리 힘들었을까. 물론 아직도 응가를 변기에 못하고, 잠 못 드는 밤이 많지만. 이 또한 유치원에 가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주기로 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내 손등에 붙은 스티커를 들여다본다. 아이가 했던 말처럼 그걸 보고 있자니, 반짝이는 별이 마치 아이 얼굴처럼 빛나 보였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나에게 감동을 주는 아이. 민감하고 예민한 아이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특별한 잠재력을 발휘한다는 말이 이제 조금씩 실감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평온함이 부디 오래 이어지길, 앞으로 기적같이 고맙고 감사한 날들만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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