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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Feb 02. 2022

엄마, 나도 가족이 많았으면 좋겠어

 여느 때처럼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소은이와 그림책을 읽고 있었다. My House라는 영어 그림책이었는데 집 안 곳곳을 소개한 뒤 마지막에 주인공인 여자 아이가 "Where is my family?"라고 묻는다. 뒷장을 넘기면 가족들이 나타나 "Here we are"라고 답하 끝이 나는 그림책이었다.


 마지막 장을 읽고 소은이가 갑자기 슬픈 목소리로

 "나도 이 아이처럼 가족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림을 들여다보니 그림 속엔 엄마, 아빠, 여자아이 외에도 귀여운 고양이와 어린 동생이 더 있었다. 무척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었다.


M: 소은아, 동생 있었으면 좋겠어?

S: 응, 나도 콩순이처럼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어.


 세 살 무렵, 한참 아기 돌보는 양육 놀이를 좋아하며 아기 인형을 동생처럼 데리고 놀던 시기는 있었지만 소은이 입으로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표현한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동생을 만들어줄 수 없기에, 소은이가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마음 아팠다.

 

 M: 하지만 동생이 생기면 콩순이처럼 엄마가 동생을 돌보느라, 소은이를 덜 안아줘야 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이런 말을 하면 소은이가 동생에 대한 마음을 철회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소은이의 마음을 넌지시 떠보았다. 그러나 소은이는 전혀 개의치 않고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S: 괜찮아! 내가 엄마를 더 안아주면 되지!


  순간 나는 마음이 숙연해지고 말았다. 엄마가 자기를 안아줄 수 없으면 자기가 나를 안아주겠다니. 다섯 살 아이의 속내가 어쩜 이리도 깊을까.  나는 잠시나마 얄팍한 생각으로 아이를 설득하려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아이에게 동생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현실이 미안하고 슬펐다. 남들은 아이 셋도 잘만 낳아서 키우는 데 그 평범한 것이 우리 가정에는 왜 그렇게 힘든 일이 되어버린 걸까.


 결혼하기 전 나는 아이를 셋은 낳아 기르고 싶던 여자였다. 여자 아이도 키우고 싶고, 남자아이도 키우고 싶고. 어릴 때 오빠나 남동생이 있는 친구가 너무 부러워서 내 아이에게는 오빠나 남동생을 만들어주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삼남매를 낳아 키우는 것이 나의 소박한 자녀 계획이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면서 자녀 계획은 세 명에서 두 명으로 인원이 감축되었고, 소은이가 태어난 후에는 외동이 거의 확실시되었다. 소은이는 너무 예민한 기질의 아이였고, 동생을 갖는 것이 몇 년 동안 불가능한 아이였다. 일단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았으니까. 우리 부부는 둘째를 가질 시간도, 에너지도, 체력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작년 4월, 암을 진단받으며 내 인생에 아이는 소은이 하나로 확정되고 만다. 항호르몬 치료가 최소 5년에서 최대 10년인데, 5년 뒤 끝난다고 하더라도 그때 되면 내 나이가 43살이니, 언제 아이를 가져서 낳아 키우겠나. 그것도 이렇게 후달리는 체력으로.


 결국 소은이에게 동생을 낳아주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언니, 오빠가 있고 동생이 있는 가정을 보며 엄마로서 부럽기도 하고, 혼자 노는 내 아이가 안쓰러울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은이가 동생을 낳아달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5살이 되며 드디어 소은이에게도 동생이 갖고 싶은 시기가 와버린 모양이다.


 소은이가 외로운가 보구나. 문득 그런 생각에 코끝이 찡해졌다. 그러고 보니 낮에 소은이가 밥을 먹다 말고 던진 말이 생각이 났다. 설날이라고 외갓집에 다녀왔는데 돌아와서 밥을 먹던 소은이가 갑자기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S: 엄마, 나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있고 싶었는데.

우리는 왜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안 살아?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감기 때문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떡국 한 그릇만 얻어먹고 돌아온 탓일까.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곰곰이 생각해보니 소은이는 더 많은 가족들 속에서 북적북적하며 지내고 싶은 거란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오늘 외갓집에 갔을 때 이모네 가족이 없는 것도 슬퍼했었지. 어린 마음에 외갓집에 가면 이모네 가족이 와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이모는 왜 없어?"라고 물으며 풀이 죽은 소은이의 표정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명절인데 몇 안 되는 가족끼리도 마음껏 만나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이 마음 아팠다. 아이에게는 부모 외에도 사랑해줄 가족이 필요하구나. 부모의 사랑뿐 만이 아니라 아이와 사랑을 나눌 친인척이 절실한 순간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가족이 대가족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는 말도 있듯이 아이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할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에게 양육을 도와줄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지만, 아이의 사회성이 발달하는 지금 이 시기에는 아이와 직접 소통하고 교류할 더 많은 가족이 간절하게 그립다.


 어떻게 하면 소은이에게 가족을 늘려줄 수 있을까? 하늘에서 갑자기 동생이 떨어질 수도 없고, 코로나로 이모도 고모도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엄마의 고민은 깊어져 간다. 어쨌든 결론은 소은이가 자라면서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오래오래 엄마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다시 한번 독하게 마음먹는다. 기적처럼  몸이 건강해져서 남들처럼 동생도 낳아주면 좋으련만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꿈이겠지. 대신 소은이 옆에서 이렇게 팔베개를 해주고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아이에게 일당백 엄마가 되어주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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