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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Mar 15. 2022

우리 유치원은 괴물 유치원이야.

아이의 상상과 현실, 그 중간 어딘가를 맴도는 엄마.

 유치원에 입학한 후로 활동량이 많아진 덕에 아이의 취침 시간이 밤 10시로 당겨졌다. 낮잠을 자지 않으니 다른 아이들은 집에 오면 쓰러져 잠을 잔다는데 소은이는 워낙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라 그런 기적이 일어날 리는 없다. 요즘 소은이는 일찍 자면 10시, 늦으면 11시에 잠이 들곤 하는데 우리는 그것에도 만족했다. 어린이집 다닐 때 소은이의 평균 취침 시간은 밤 12시였고, 새벽까지 안 자고 버티는 날도 무수히 많았기에. 10시면 감사할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녀석이 유난히 잠자기를 거부했다. 너무 피곤해서 몸이 버티지를 못하는데 정신은 자지 않겠다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졸음이 머리끝까지 오는데도 안 자려고 바둥거는 녀석을 보며, 졸리면 자면 되는데 너는 왜 그렇게 안 자려고 애를 쓰냐고, 나는 결국 참다못해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잠이 오면 자면 되는데 왜 그토록 안자는 건지 어른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며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를 보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나는 바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M: 소은아, 엄마가 화내서 정말 정말 미안해.

S: 나도 정말 미안해, 엄마.


 예전 같았으면 아이를 달래는데도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이제 다섯 살이 되어 제법 의젓해진 아이는 금세 눈물을 그치고 엄마 품에 안겼다. 토닥토닥 아이의 가슴을 토닥여주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소은이가 나지막이 이런 말을 했다.  


S: 엄마, 우리 유치원은 괴물 유치원이야.

M: 괴물 유치원?

S: 응, 유치원에서 괴물이 나타나서 나를 막 쫓아왔어.


 유치원에 입학한 지 2주. 그동안 새로운 유치원을 너무 좋아하고, 신나게 다니고 있던 터라 소은이의 말이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최대한 놀라움을 감추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M: 혹시 착한 괴물이었어?

S: 아니, 무서운 괴물.  

M: 정말? 소은이 무서웠겠다. 그럼 괴물이 나타났을 때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셨어?

S: 선생님들도 괴물이야. 무서워.

M: 친구들은?

S: 친구들은, 착해.


 친구들은 착하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소은이는 사실 무척 까다롭고 예민한 기질의 아이라 유치원 입학이라는 새로운 환경 변화는 나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유치원에 빨리 적응했고, 선생님도 소은이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아서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유치원에서 힘든 부분이 있었던 걸까.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이에게 화를 내다니.


 언젠가 아이에게 물은 적이 있다. 왜 그렇게 자는 것을 싫어하냐고. 아이는 잠이 들면 무서운 괴물이 나타날까 봐 그렇다고 대답했다.


'오늘따라 네가 안 자려고 힘겹게 버틴 것은 잠이 들면 꿈속에서 무서운 괴물이 나타날까 봐, 무서운 꿈을 꿀까 봐 그런 것이었구나. 낮에 힘든 일이 있으면 밤에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이었는데 엄마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나는 소은이와 예전에 나눈 대화가 떠올라 소은이에게 더욱 미안해졌다.


M: 소은아, 오늘 혹시 유치원에서 힘든 일 있었어?

S: 응!

M: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어? 엄마한테 말해줄래?

S: 유치원 버스 아저씨가 "떠드는 사람 누구야!"하고 화를 냈는데 괴물처럼 너무 무서웠어.


 소은이가 잠든 밤, 나는 생각에 잠긴다. 아이의 말을 엄마인 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선생님께 내색을 해야 할까? 아니면 모른 척 넘어가야 하는 것일까? 기사님이 한 마디 하신 것을 아이가 너무 크게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정말 아이들에게 그렇게 무섭게 화를 내셨을까?


 학부모가 되는 길은 참 어렵다. 수많은 학부모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할 것이다. 아이가 집에 와서 한 이야기를 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이의 말만 믿어서도 안되지만, 아이의 말을 무시해서도 안 되는 것이 바로 엄마이기에. 나는 아이가 만들어낸 상상과 현실, 그 중간 어딘가를 맴돌며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린 결론은 지난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아이가 어릴수록, 부모는 아이를 보낸 기관과 민감하게 소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이가 보내는 신호에는 이유가 있고, 그것이 어른들에게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언정 아이에게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힘든 일이면, 부모로서 모른 척 하면 안될 것 같았다.


  마음을 차분히 하고, 숨을 크게 내쉬어 본다. 그저 한 번쯤 스쳐 지나가는 일이기를. 부디 아이를 쫓아왔던 괴물이 고단하고 피곤했던 하루를 보낸 아이가 만들어낸 상상 속의 괴물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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