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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Mar 30. 2022

나, 할아버지 손 잡고 갈 거야.

내가 꿈꾸던 아이

 아이는 미술학원에서 나와 친할아버지를 보자마자 달려가 안겼다.


"할아버지~~~!"


 19년 1월, 설날이 마지막 만남이었으니 2년 2개월 만에 상봉이었다. 그때 소은이의 나이는 불과 세 살. 그 후 코로나가 터지면서 2년 넘게 왕래를 하지 못했다. 그동안 훌쩍 커서 다섯 살이 된 소은이는 과연 친할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할까. 중간중간 영상 통화도 하고, 사진도 보면서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뵙는 것은 너무 오랜만이다 보니 소은이의 반응이 궁금했다. 처음엔 당연히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조금은 낯설어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소은이는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마치 어제 만난 사이처럼 달려가 친할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소은이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방금 만든 미술 작품을 할아버지에게 자랑해 보이는 소은이.


 "할아버지, 나 좀 봐요. 이건 잠자리예요."

 "할아버지, 우리 집에 가는 거예요? 야호! 신난다!"

 "나 할아버지 손 잡고 갈 거야. 엄마는 아빠랑 손 잡아"


 그리고는 다정하게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을 향해 걸어가는 게 아닌가.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소은이는 친할아버지와 길가에 심어진 꽃도 보고, 나무에서 지저귀는 새도 만나고, 예쁜 하늘도 올려다보았다.


 아버님은 이렇게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것이 꿈만 같다며 좋아하셨다. '아이고, 예쁜 것.'하고 고사리 같은 손을 연신 쓰다듬으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찡했다. 저리 예뻐하시는데 그간 코로나로 인해 만나지 못하고 산 세월이 야속했다.


 집으로 돌아온 소은이는 할아버지 곁에 딱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할아버지, 내가 소은이 방 구경시켜 줄게. 이리 와 보세요."

 "할아버지, 이거 봐봐요."


 소은이는 종달새처럼 재잘거리며 할아버지 손을 붙들고 이 방 저 방을 다녔다. 그리고선 자기 방에 가서 아끼는 장난감을 보여드리고, 그림책을 읽어 달라 조르기도 했다.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어쩜 저렇게 친화력이 좋단 말인가. 너무 오랫동안 못 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데면데면하지 않을까 짐작했던 것과 달리 아이는 스스럼이 없었다.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하고 다정했다.


 "나, 할아버지랑 잘 거야."

 "나 오늘은 자기 전에 엄마랑 책 안 읽고, 할아버지랑 읽을 거야."

 

 밤이 되자 소은이는 급기야 할아버지와 자겠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있어야지만 잠을 자던 아이였기에 이건 정말 예상치도 못한 반응이었다.

 

 "할아버지, 내일도 모레도 우리 집에서 주무실 거야. 내일은 엄마랑 아빠랑 할아버지 모시고 병원에 가야 하니까 오늘은 엄마랑 자고 내일 할아버지랑 책 읽자."

 

  겨우 이렇게 아이를 설득하고 아이를 재웠다. 다음날이 되자 소은이는 눈을 뜨자마자 "할아버지, 안 간 거 맞지? 우리 집에 있지?" 하며 할아버지를 찾았다. 생각해보니 우리 집에 자고 가는 손님이 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소은이가 사람을 참 그리워했구나, 사람을 참 좋아하는 아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 많고 따뜻한 아이. 내가 꿈꾸던 아이. 나는 문득 지금 소은이의 모습이 내가 꿈꾸던 아이였음을 깨달았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내 아이가 오랜만에 만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달려가 안길 수 있는, 그런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라길 바랐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야 워낙 어릴 때부터 자주 봐왔고 가깝게 지내기에 소은이가 따르고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2년 만에 만난 친할아버지를 살갑게 대하는 모습은 볼수록 신기하고 대견하게 느껴다.

 

 정답게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으며, 나는 이 풍경을 오래오래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었다. 비록 아침을 먹고 아버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평온하고 행복했다. 아버님은 소은이에게 손수 밥떠먹여 주시고, 이제 소원을 풀었다며 좋아하셨다. 그리고 소은이는 제비 새끼처럼 할아버지께 밥을 받아먹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는 아버님이 오래도록 건강하셔서 이렇게 함께 밥을 먹는 소소한 행복이 오래오래 영원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느꼈다. 행복이란 다른 게 아니구나. 내가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과 평범한 일상.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마주 보고 웃을 수 있는 시간들. 이런 것이 바로 행복임을 느꼈다.  


 모두가 잠든 이 시간, 나는 가족들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 부부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사랑하는 양가 부모님. 부디 오래도록 건강하게 우리 곁에 머물러주시길. 그리고 오늘 하루 아버님의 보호자 역할을 하면서 환자라는 사실잠시 었던 나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지금처럼 살가운 며느리, 사랑스러운 딸로 부모님 곁을 오래 지킬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내가 꿈꾸던 아이가 바로 내 눈앞에 있음에 감사하다. 앞으로도 나는 소은이가 어른께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또 그 사랑을 되돌려줄 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와 함께 보낸 시간은 짧지만 그 추억을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하고, 먼 훗날 다시 만날 때도 오늘처럼 바로 뛰어가 안길 수 있는, 그런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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