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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Apr 05. 2022

여기 오니까 코코가 더 보고 싶다.

코코 기일 2주년

M: 우리 코코랑 마지막으로 걸은 곳 가볼까?


 얼마 전 아이와 산책을 하다, 코코와 마지막으로 걸었던 산책길이 생각났다. 도로에 차를 대고, 코코를 떠올리며 비탈길을 올랐다. 날은 추웠지만 그럭저럭 걸을 만했다. 그런데 몇 걸음 걷지 않아 산길의 풍경이 예전 같지 않음을 발견했다. 공사장 표지판이 군데군데 놓여있고, 언덕에 있던 나무를 다 깎아서 산은 민둥머리를 하고 있었다.



M: 어머,  여기 이제 차도로 바뀔 건가 봐.


 안내판을 보니 산을 깎아 길을 낸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M: 아쉽다. 여기 코코랑 추억이 깃든 곳인데.


 그곳은 친정에서 키우던 강아지 코코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 날, 온 가족이 함께 코코를 데리고 산책을 했던, 우리에게는 아주 의미 있는 장소였다. 나의 말을 알아듣고 소은이가 황급히 물었다.


S: 엄마, 여기 이제 차도로 한대? 이제 사람 길 아니래?

M: 응, 그런가 봐.

S: 힝, 아쉽다. 나 아끼고 싶은데! 공사하면 안 되는데..

M: 그러게, 아쉽네.

S: 응, 나 여기 오니까 코코 더 보고 싶다.


 아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코코가 우리 곁을 떠난 지 2년이 되었는데 정확하게 코코를 기억하고 있다니. 당시 나이 세 살에 불과했던 아이가, 어떻게 그걸 기억하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는 기억력이 좋았다. 그리고 아이가 특정 장소를 특별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도 기특했다. 소은이는 우리의 추억이 깃든 공간이 공사로 인해 사라짐을 같이 아쉬워해주었다. 


S: 엄마, 코코는 어떻게 하늘나라에 갔어?

M: 하느님이 데려가셨어.

S: 왜 데려가셨어? 지금도 코코랑 같이 살면 좋겠다.

M: 코코는 나이가 아주 많은 할머니였거든. 그래서 여기서 너무 오래 살아서 하느님이 코코가 보고 싶어서 데려가신 거야.

S: 그렇구나.


 나는 코코 생각에 다시금 눈시울이 붉어졌다. 조금 더 우리 곁에 있다 갔으면 좋았을 텐데. 코코가 떠난 지 2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코코와 함께 걸은 그 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런데 이제 이 길이 없어지다니. 정말 추억 속으로 코코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고 슬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코코를 그 먼 곳에 뿌리는 게 아니었는데. 당시에는 코코가 너무 가까이 있으면, 계속 코코 생각이 나서 슬플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코코를 뿌렸는 돌이켜보니 오늘 같은 날, 가까운 곳에 코코가 있었다면 그 아쉬움이 좀 더 덜하지 않았을까. 좀 더 자주, 코코를 추억하고 떠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 이 길마저 없어지면 코코를 어디에서 추억해야 할까. 이런 생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조금 서글펐다. 그러나 이런 어른의 생각과 달리 소은이는 일상 모든 곳에서 코코를 떠올렸다.

 

 한 번은 소은이와 사과 씨를 땅에 심고 나무에 이름을 붙여주자고 한 적이 있었다.


S: 엄마 사과는 동그라니까 코코라고 하자. 나 코코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래.

M: 그래, 코코라고 불러주면 코코도 좋아할 거야.

S: 코코가 내가 얘기하는 거 다 들려? 말은 못 해도?

M: 그럼, 코코가 다 듣고 있지. 하늘에서 보고 있지.

S: 나 코코 보고 싶어. 코코 언제 오까?

M: 코코는 하늘나라에서 잘 놀고 있지.

S: 잘 놀고 있어?

M: 응, 그러니까 소은이도 여기서 잘 놀고 있으면 코코가 좋아할 거야.


 이렇게 코코는 소은이로 인해 불쑥불쑥 우리의 삶 속에 등장했다. 소은이는 사과 씨를 봐도, 하늘을 봐도, 길 가는 강아지를 봐도 코코를 떠올렸다. 살아있는 것에 대한 애정.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 코코가 소은이에게 남긴 것들.


 그리고 나는 소은이를 통해 코코를 추억하는 법을 배웠다. 코코와 마지막으로 걸은 길이 없어져도, 코코와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코코를 뿌린 곳이 멀다 하더라도, 코코가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2년 전 우리의 마음에 코코 나무를 심은 것처럼 코코는 영원히 우리 마음 속에 살아있다.

코코가 하늘나라 간 날, 세 살 소은이와 꽃잎으로 만든 코코 나무.

 22년 4월 5일 식목일. 오늘은 코코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2주년 되는 날이다. 소은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코코가 좀 더 오래 나를 볼 수 있게 바깥을 걸었다. 햇볕이 따뜻했고, 하늘은 맑았다. 코코가 오늘도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 믿는다.


 코코야, 사랑해.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지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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