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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Apr 06. 2022

아빠랑 나랑 결혼해야지.

아이에게 남근기의 시기가 왔다!

 며칠 전 남편이 편지 봉투 한 장을 내게 건넸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빨간색 편지 봉투였다. 내게 고마운 마음을 전할 일이 있어 오랜만에 남편이 쓴 편지였다. 그런데 내 손에 편지가 전달되기도 전에, 눈 깜짝할 사이에 봉투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범인은 다섯 살 꼬맹이. 소은이는 침대에 발라당 눕더니 봉투에서 카드를 꺼내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다.


 우리 사랑하는 소은이 잘 있었어? 난 아빠야. 우리 소은이 매일매일 심심하지 않아? 아빠는 회사에서 소은이 매일매일 생각해. 우리 사랑하는 소은이 매일매일 사랑해. 그리고 아빠는 소은이편이야.


 소은이는 낭랑한 목소리로 천연덕스럽게 편지를 읽어나갔다. 카드를 거꾸로 들고서. 난 그런 소은이가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소은이를 보고 있었다. 소은이는 마치 눈앞에 글자를 보고 읽는 것처럼 막힘이 없었다. 누가 보면 정말 아빠가 소은이에게 편지를 쓴 줄 알 정도로 완벽한 연기였다. 아마도 소은이가 아빠에게 듣고 싶은 말이었으리라. 낭독을 마친 소은이는 뿌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엄마, 아빠가 나한테 편지 써줬어."하고 씩 웃었다.   


 요새 소은이는 아빠에 대한 사랑이 부쩍 커졌다. 원래도 아빠를 좋아하긴 했지만 요즘은 왠지 엄마보다 아빠를 더 많이 찾는 기분이랄까. 자려고 누우면 아빠가 보고 싶다며 흐느끼기도 하고(우리 집은 안방에서 내가 소은이를 재우고, 남편은 서재방에서 따로 잠을 잔다), 그림책은 엄마가 읽고 아빠는 자기 옆에 누워 자기를 토닥이라고 요구를 하기도 한다. 그러더니 어느 날은 안방 벽에 걸린 웨딩사진 액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S: 엄마, 저 때 결혼한거야?

M: 응, 맞아. 아빠랑 결혼한거야

S: 어떻게 저런 좋은 아빠를 구했어?

M: 소은이, 아빠 좋아?

S: 응, 아빠는 멋있어.

S: 어떻게 저런 좋은 아빠를 구했어?(한번 더)

M: 엄마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착하게 지내서 아빠를 만날 수 있었던 거야. 소은이도 아빠처럼 멋진 남자를 만나려면 엄마처럼 해야 돼.

S: 그래서 아빠를 만나서 깜짝 놀란거야? 너무 멋있어서?

M: 어, 맞아.

S: 공부 어디서 했어?

M: 학교에서.

S: 빵집에서?


 진지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다 빵집이란 말에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같은 결혼사진을 보며 엄마가 공주처럼 예쁘다고 칭찬하고, 엄마의 하얀 웨딩드레스에 감탄했던 것과 달리 아이의 신경이 아빠에게 쏠려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어느날은 식탁에 앉아 거실에 걸린 결혼식 가족 단체사진을 한참 바라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S: 저거 엄마, 아빠 결혼사진이야? 저 때 나는 없었어?

M: 응, 저 때 소은이는 아직 안 태어났지.

S: 왜 나는 없어?

M: 소은이는 엄마, 아빠가 결혼을 하고 나서 생긴 거니까.


 잠시 후 소은이가 장난감 반지를 들고 나타났다.  


S: 이게 내 결혼반지야. 아빠랑 나랑 결혼해야지.

M: 아빠는 이미 엄마랑 결혼했는걸?

S: 그래도 또 결혼해.

M: 아빠는 이미 엄마랑 결혼했어. 소은이는 이다음에 커서 아빠 같은 남자 만나서 결혼해.

S:  나도 크면 아빠 같은 남자랑 결혼해서 아이 낳고 아이한테 밥 챙겨주고 할 거야.

M: 정말?

S: 응!

M: 그럼 우리 소은이 아빠처럼 좋은 남자 만나야 해.

S: 어떻게?


 대화를 듣고 있던 남편이 웃으며 한 마디를 거든다.


D: 소은아, 착하고 돈 많은 남자 만나면 돼.


 그러자 소은이는 진지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S: 엄마는 어떻게 저런 남자를 선택했어?(아빠를 가리키며)


 나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꾹 참으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M: 소은아, 남자는 아빠처럼 착하고 요리 잘하는 남자를 고르면 돼.


 소은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이에게 아빠가 결혼하고 싶은 멋진 남자라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것이 프로이트가 말한 '남근기'구나 싶어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남근기가 되면 이제 아이가 엄마에게 애정을 쏟고, 엄마를 무한정 사랑하는 시기는 지나고, 그 애정의 대상이 이성 부모에게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Freud)는 인간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비이성적이며, 자신도 알지 못하는 숨겨진 무의식적 동기에 의해 영향을 받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또 성적 본능의 에너지를 리비도(libido)라 칭하고, 리비도는 일생 동안 정해진 순서에 따라 서로 다른 신체부위에 집중된다고 설명했다. 프로이트는 리비도가 어느 부위에 집중되느냐에 따라 성격발달 단계를 구분했는데, 이를 심리성적 단계라고 부른다. 심리성적 단계는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생식기의 다섯 단계로 구분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근기 [phallic stage] (심리학 용어사전, 2014. 4.)


 교육학을 공부할 때, 인간의 여러 발달 단계를 배우면서 나중에 내 아이가 태어나면 이게 맞는지 검증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정신없이 아이를 키우다 보니 프로이트가 말하는 구강기와 항문기는 벌써 저만치 지났고 이제 '남근기'에 접어드는 아이가 비로소 눈에 보인다. 이론으로 배우던 내용이 막상 현실로 나타나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이런 게 눈에 들어올 정도인 걸 보면 비로소 육아가 조금은 할 만해진 것 같기도 하고?


 남근기는 프로이트가 구분한 심리성적 발달단계 중 세 번째 단계로 만 3세에서 6세까지 지속된다. 이 시기에는 리비도가 항문으로부터 성기로 옮겨간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보통 여자아이는 이 시기에 아버지의 남근이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남근을 선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에게 남근을 주지 않은 어머니를 원망하게 된다. 딸이 무의식적으로 어머니를 미워하고 아버지를 좋아하는 경향을 정신 분석학에서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하며 이때 여아는 아버지의 애정을 독점하고 어머니를 경쟁자로 인식하게 된다. 남아의 경우는 반대로 아버지에게 반감을 가지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한다. 하지만 보통의 남근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남근기 (만 3~5세)가 지나 딸이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되찾고 어머니의 ‘여성성’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초자아’가 형성될 때 자연스럽게 해소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아이가 이성 부모에게 더 관심을 갖고,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아이가 아빠에게 매달리고 나를 외면하면 마음이 조금 아플 것 같다. 친정 엄마도 내가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벌인 내기에서 엄마가 아닌 아빠를 응원한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말씀하시니까.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인데 엄마의 마음속에는 그게 서운함으로 남았었나 보다.


 소은이는 아직 엄마보다 아빠가 좋다거나, 엄마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혹시라도 아이가 아빠를 더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상처받지 않아야겠다. 그럼 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 모두 아이에게 끊임없는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고, 신체적인 놀이로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많이 해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또 부모는 아이의 이성 부모에 대한 사랑을 받아주되, 아이가 성 역할을 학습하고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올바른 성 정체감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가정에서 모범이 되는 성 역할과 가치관을 심어 주는 부모의 양육태도가 중요하다고 하니, 왠지 두 어깨가 무거워진다. 특히 프로이트는 남근기가 아동의 인격 형성에 결정적인 발달단계라고 강조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많이 사랑하려 해도, 늘 부족하게 여겨지는 아이에 대한 사랑. 오늘도 잠이 든 아이의 뺨에 살며시 손을 대보며 낮 동안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한 게 미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이해해주고, 사랑해주고, 엄마에게 무한한 힘을 실어주는 사랑스러운 내 딸. 부디 지금의 발달단계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지나, 아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기를 소망한다. 또 아이의 바람대로 먼 훗날 아빠와 같이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아껴주는 것이겠지.


 요즘 소은이가 하는 말 중에 마법 같은 힘이 솟아나게 하는 말이 있다.


 엄마, 아빠. 나는 매일매일 행복해!


 아이가 행복하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부모를 행복하게 하는 말 아닐까. 앞으로도 소은이가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 소은이의 앞날에 늘 따뜻한 햇살이 비추길 오늘도 간절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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