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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Apr 08. 2022

엄마, 저 꽃은 이름이 뭐야?

다섯 살 아이에게서 꽃과 인사하는 법 배우기.

 나의 아침은 항상 분주하다. 유치원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허둥지둥 아침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머리를 빗기고 소은이의 손을 잡고 달려 나간다.


M: 빨리 나와, 소은아.


 엄마의 애타는 마음과 달리 소은이는 느긋하다.  천천히 밥을 먹고, 천천히 옷을 입고, 천천히 머리핀을 고른다. 그럴 때마다 나의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아이를 재촉하기에 여념이 없다. '빨리'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지만 어느새 빨리하라는 말이 연거푸 반복된다.


 어제도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종종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가고 있는 데 갑자기 소은이가 걸음을 멈추며 묻는다.


S: 엄마, 저 꽃은 이름이 뭐야?

M: 저거? 목련꽃이야. 목련이 피었네.


 주차장에서 나오는 길 목련 나무에 어느새 목련 꽃 봉오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빨리 가야 하는데 딴청을 피는 아이가 조금 원망스럽게 느껴져 건성으로 대답했다.


S: 목련꽃아, 안녕~


 소은이는 목련을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소은이에게는 유치원 버스를 타는 것보다 목련과 인사를 나누는 일이 더 중요해 보였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아끌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소은이는 정류장 뒤에 핀 꽃나무를 바라보며 내게 또 물었다.


S: 엄마, 이 꽃은 이름이 뭐야?

M: 글쎄, 이건 무슨 꽃일까? 엄마도 잘 모르겠어.


 그러는 사이 어느새 유치원 버스가 도착하고, 나는 아이를 태워 보내고 꽃나무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내가 아는 꽃 이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이 민망했다. 아이에게 식물의 이름을 알려줄 수 있는 엄마이면 좋을 텐데.


 오늘도 어제처럼 아이의 손을 잡고 부랴부랴 유치원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고 있는데 아이가 주차장 입구에서 손을 흔든다.


S: 목련꽃아, 안녕~


 딱 한 번 이름을 말해주었을 뿐인데,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나는 아이의 기억력에 새삼 놀랐다. 아이는 꽃의 이름과 그 꽃이 목련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꽃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아이의 미소를 보며 어제 아이가 물어본 꽃의 이름을 몰랐던 보다 더 무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살면서 꽃에게 이렇게 다정하게 인사해본 적이 있던가. 꽃에게 한 번이라도 다정하게 말을 걸어본 적이 었던가. 어쩌면 유치원 버스를 타는 것보다, 길가의 꽃과 나무를 관찰하고 자연과 노니는 일이 아이에게는 더 의미 있는 일일지도 모르는데.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서두르기만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유치원 버스야 놓치면 내가 데려다주면 그만인 것을, 왜 그렇게 재촉하고 조급하게 굴었을까.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날씨가 너무 좋아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어느새 꽃나무에 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겨울 내내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없던 나무들이 이제야 이름표를 찬 것처럼 눈에 들어왔다.


 너는 목련 나무였구나.

 너는 벚꽃 나무였구나.


  다 똑같아 보이던 나무들이 꽃이 피어나자 모두 달라 보인다. 이렇게 다른 존재임을 모르고, 다 같은 나무라고 생각했다니.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녀석들이 봄이 온 것을 어떻게 이리 알고 앞다투어 피어날까. 나는 자연이 주는 신비로움에 감탄하며 걷고 또 걸었다.



 모든 꽃이 어쩜 이렇게도 곱고 예쁠까. 어느 사이 이렇게 활짝 피어난 것일까. 꽃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고, 사진도 찍어보았다. 소은이가 한 것처럼 꽃에게 다정하게 말도 걸고, 애정 어린 눈으로 꽃을 바라봐주었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봄이 온 것도, 아름다운 꽃이 핀 것도 모르고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자 딸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다섯 살 딸아이에게서 꽃과 인사하는 법을 배우고, 꽃을 보는 마음의 여유를 찾고 나니, 어느덧 살아 있다는 것이 기쁘게 여겨졌다. 그러고보니, 암환자가 되고 나서 처음 맞이하는 봄이었다.


 '비록 유방암을 겪었지만, 이렇게 살아남아 봄이 온 걸 느낄 수 있다니!'


 두 눈으로 아름다운 꽃을 구경하고, 두 귀로 새가 지저귀는 노래소리를 듣고, 튼튼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겨울이 지나면, 봄이 기어이 오는 것처럼. 결국은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느날 갑자기 인생에 아프고 힘든 겨울이 찾아올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봄이 성큼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아이가 실컷 꽃을 볼 수 있게 꽃구경을 가야겠다. 이제 더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여유로운 마음으로 아이와 꽃을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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