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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Jun 03. 2022

신체발부는 수지부모

노래가 가지는 힘

S: 엄마, 아빠 집토끼처럼 귀를 쫑긋하고 내 노래 들어보세요.


한 손만으로도 세어볼 수 있는 아름다운 말 정겨운 말.

한 손 만으로도 세어 볼 수 있는 다섯 글자 예쁜 말.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아름다워요.

노력할게요.

마음의 약속 꼭 지켜볼래요.

한 손 만으로도 세어 볼 수 있는

다섯 글자 예쁜 말.


 어느 날 갑자기 소은이가 노래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유치원에서 배운 모양이다. 이 노래는 소은이를 임신했을 때 임산부 합창단에서 불렀던 <다섯 글자 예쁜 말>이라는 동요였다. 내가 불렀던 노래를 아이의 입으로 다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이는 손가락 하나하나를 접어가며 노래를 또박또박 불렀다. 아이의 노래가 끝나고, 나는 저절로 기분이 좋아져 이렇게 말했다.


M: 우와, 소은이 노래 정말 잘한다!  

소은이가 노래 불러주면 엄마는 기분이 좋아.

S: 나쁜 기분이 살살 녹아?

M: 응, 맞아! 소은이 노래 듣고 나쁜 기분이 살살 녹아서 다 없어져.


 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노래를 들으면 나쁜 기분이 아이스크림처럼 녹는다는 생각. 소은이는 이런 표현들을 대체 어디서 배웠을까? 노래가 가진 힘은 때론 놀랍도록 크다. 하물며 사랑하는 아이가 엄마에게 불러주는 노래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감정을 정화시키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노래.


 노래가 가지는 힘은 이뿐만이 아니다. 아이는 노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얼마 전에는 태어나 처음 듣는 노랫말이 아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S: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니 몸과 머리카락 피부는 부모님께 받았으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니라.

!경!


 효경이라니!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어버이날을 맞아 유치원에서 가르친 것일까. 효경의 구절을 리듬에 맞추어 부르는 아이를 보며 신기하기도 하고 마음이 뭉클했다. 효경이란 효의 원칙과 규범을 수록한 유교 경전 중 하나. 아이는 노랫말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소 하루에 한 번씩 저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비록 아이가 그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런 노래를 흥얼거리고, 접한다는 것이 반가웠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공경하도록 배우고 그 마음 그대로 어른으로 성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편으론 옛날 우리 조상들이 서당에서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를 황~' 이렇게 노래로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친 게 떠올랐다. 이렇게 노래로 천자문을 외우고, 경전을 배우면 어린아이도 내용을 쉽게 익힐 수 있겠구나, 새삼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소은이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귀여운 율동까지 곁들여져 웃음을 더해준다.


S: 병아리가 인사해. 삐약삐약삐약.

개구리가 인사해. 개굴개굴개굴.

강아지 멍멍멍. 고양이 야옹~

친구들이 인사해. 안녕하세요.

선생님이 인사해. 안녕하세요.


 '고양이가 야옹' 때는 손가락 세 개를 얼굴에 갖다 대고 고양이의 수염을 흉내 낸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매번 그렇게 앙증맞은 동작을 반복한다. 인사하는 대목에서는 손을 가지런히 배꼽에 놓고 얼마나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는지. 의성어가 반복되며 리듬감을 익히고, 인사하는 예절도 배우고, 이 짧은 노래로 아이들이 배우는 게 얼마나 많은지 놀랍다. 유치원에 간 후로 부쩍 새로운 노래들을 많이 배워오는데 때론 그게 너무 좋아서 유치원에 보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소은이가 어느 유치원을 갈 지 고를 때 나의 선택 기준 중 하나는 교실마다 피아노가 있는였다. 우리 유치원은 비록 건물은 좀 낡았지만 교실마다 피아노가 있는 풍경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선생님은 피아노를 치고, 아이들은 함께 노래하는 풍경. 내가 꿈꾸는 유치원의 모습이었다. 영어를 배우고, 과학 실험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노래하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피아노가 없는 유치원은 어쩐지 중요한 무언가가 빠진 기분이 들었다.


 지금 아이는 다섯 살이지만 유치원에서도, 가정에서도 아직 한글 교육을 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처럼 노래율동을 가르친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워온 노래를 들려주면 우리 집은 행복기운으로 가득 찬다. 특히 외갓집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 불러 모아 놓고 자신의 노래를 들으라고 야단이다. 이때 다른 가족이 말을 하거나 딴짓을 하면 안 된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파는 사람이 있으면 처음부터 다시 노래를 시작한다. 누군가 노래를 따라 불러도 "내가 할 거야!"하고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은 소은이에게 집중하라고 서로 눈짓을 주고받거나, 웃음을 참으며 어린 가수의 공연을 진지하게 감상한다. 열창이 끝나고 터지는 박수와 함성. 아이가 주는 시끌벅적함과 행복이다.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들을 때 가지는 감정의 주머니가 따로 있는 것 같다. 슬플 때 슬픈 노래를 들으며 그 감정이 증폭되고, 행복할 때행복한 노래가 그 감정을 배로 만들어준다. 그런데 아이들의 노래 주머니는 늘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슬픈 동요는 없지 않은가. 아이들은 결코 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이 참 부럽고 좋았다.


 소은이가 노래하는 모습을 볼 때면 문득 엄마가 들려주시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나도 어릴 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는데 누가 옆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려 하면 "따라 하지 마!"하고 혼자서만 노래를 부르려 했단다. 그랬던 꼬마가 이제 마흔을 앞두고 있다니, 세월이 정말 쏜살같다. 돌이켜보면 나의 어린 시절은 참 행복했고, 부족함이 없었다. 부모님께 참 감사한 일이다.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게 해 주셔서,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소은이의 노래는 이처럼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가게 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고, 행복한 마음이 되게 한다.  


 나는 오늘도 소은이가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길 기다린다. 그럼 때론 힘들고 지치고 울고 싶은 날에도 소은이의 말처럼 나쁜 기분이 녹아서 다 없어질 테니까. 소은이가 지금처럼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로 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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