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평화롭던 이 날 아침,
우린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준비성 부족, 예측 부족, 일단 가보자는 대책없는 추진력.
실수와 부족이 하나 둘 모이니 고생은 배가 된다.
그리고 그 고생은 추억도 되고 배움도 된다.
아직까진 평화로운 아침
이렇게 허기졌던 경험이 있었을까...
어릴 때, 노는 데 정신이 팔려서 해가 질 때까지 뛰어다닌 적이 있다.
마지막 친구까지 집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내 다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단걸 느꼈다.
고픈 배를 부여 잡고 집에 돌아와 숟가락으로 밥을 퍼 올리는데
손이 덜덜 떨려 입에 가져 가는데 한참 걸렸던 기억이다.
노느라 먹는 걸 잊었던 적은 여러번.
먹을 게 없어서 끼니를 굶었던 기억은...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없다.
우리 아이들은 어땠을까...
굶어본 때라곤 먹고싶은 반찬이 없어서 먹지 않았을 때 뿐이지 않을까.
아이들이 늦게까지 밖에서 놀 땐
배낭 가득 간식을 넣고 따라 다니며 먹였었으니까.
여행 삼 일 째, 우리 뭐라도 씹게 해 주세요 ~~~~
어제는 여유를 부리며 쉬엄쉬엄 자전거를 탔다.
저녁엔 고기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덕분에 오늘 아침은 컨디션이 좋다.
"배고프니?"
"아니요."
"나도 아직은 먹고싶은 생각 없어."
"그치? 나도. 조금 더 가다가 아침 먹자"
"네, 좋아요."
"오키."
우리가 묵었던 숙소 근처에는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많았다.
시장 근처였고 번화가 이기도 했다.
난 가끔 착각 한다.
내 앞에 많이 보이는 건 어디서든 계속 있을거 같다는 착각.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건 없으면 앞으로도 계속 없을거 같은 착각.
이 날 우리는 모두 이런 착각에 빠졌다.
주변이 번화가이니 앞으로 가는 길도 계속 이럴거라는 착각 말이다.
자전거 길을 찾아 들어갔다.
자동차들이 다니는 도로 옆 울퉁불퉁한 인도를 지나다
자전거 잘 다닐 수 있게 닦아놓은 길로 오니 편안하다.
게다가 온통 나무와 물 뿐이고 사람은 우리 뿐이다.
사람 없는 길에 우리만 있을 때 난 자유를 느낀다.
어제는 31도 였는데, 오늘은 1도가 더 올랐다.
32도. 강에서 올라온 물기를 담은 더위가 몸에 자꾸 달라 붙는다.
그래도 나무 그늘이 있어 다행이다.
살랑 바람도 없는 거리를 한 시간쯤 달리다보니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더운데 허기진 상태로 자전거를 타야해서 짜증이 났는지 아이들은 티격태격 하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아침 밥을 먹었으면 좋겠는데...
"여긴 자전거 길이라 식당이 없나봐. 좀 가다보면 마을이 나오겠지?
그때 식당찾아 밥먹자"
사람 사는 집이 있는 마을이 나오길 기대하며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그냥 가는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어! 집이다! 마을이다!"
사람 사는 집이 나왔고 집 앞에는 자동차도 있고... 마을이다.
가정집만 있고 상가는 없는 마을이라는게 문제긴 했지만.
허무한 마음을 물로 달래 본다.
물을 마시는 아이의 얼굴에 물이 흘렀다.
마시던 물이 얼굴에 튄건지 착각을 할 정도로 땀이 나는 중이었다.
자전거 길은 도로에 흰선 대신 파란 선이 그려져 있다.
자전거 길을 따라가는데 길이 막혔다.
지나는 주민의 도움을 받아 마을 길로 접어든 참이었다.
마을이 있으니 편의점이라도. 가정식 백반집이라도 있겠지 하며 갔건만
우리를 맞아준 건 이어지는 오르막 이었다.
오르막에 온 힘을 다 해야하니 짜증 낼 틈이 없다.
우린 서로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우회도로를 돌아돌아 다리를 건넜다.
드디어 자전거 길인데 이정표가 없다. 좌로 갈까 우로 갈까... 이것이 문제로다.
고생 끝에 그늘을 만났다. 그늘의 맛은 달콤 했다.
쓴 한약을 먹은 뒤 한 알 집어 먹는 알사탕 같달까.
우리의 힘든 여행도 한약처럼 쓰지만 몸과 마음에 달콤한 기운을 넣어줬겠지.
음식에 단짠이 있다면 경험엔 쓴단이 있나보다.
우린 다양한 굵기의 쓴단을 맛보며 경험치를 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