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노인과바다" 라는 소설이 있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워낙 유명한 소설이기 때문에 구구절절 줄거리를 말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아직 소설을 접하지 못한 해야할 것이 남아있는 행복한 이들을 위해 잠깐 소개하자면 과거에는 힘도 세고 고기도 잘잡던 노인이 84일동안 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드디어 85일이 되던날 거대한 청새치 한 마리를 잡으면서 겪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그렇다 오늘은 낚시 이야기로 시작해보려한다. 마치 내가 노인과 바다의 노인이 된 것처럼 대왕문어를 잡은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하지만 이글은 사실 대왕문어를 잡은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집착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동안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듯 하루하루를 버티어왔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채 마음의 공허함을 다른 것으로 채우고 있었다. 인생의 계획을 위해 건설적으로 살아야 했지만, 그러기에는 마음의 공허함이 너무 컸다. 나쁜 습관들이 몸에 배기 시작했다. 흡연,과소비, 외도등 해서는 안 될 것들에 중독되고 있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잠시나마 내 마음의 공허함을 잊게 해주었다. 나의 약한 마음가짐으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고 있음에도 나는 나쁜 것들이 주는 순간의 쾌락에 점점 중독되어 가고 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낚시라는 취미생활도 내 마음의 공허함을 잊을 수 있는 순간의 쾌락을 주는 도구로 되어 버렸다. 취미생활이라는 구실아래 가정을 돌보지 않고 주일마다 낚시를 갔다. 당연히 가정생활은 뒷전으로 둔 채 내 기분만 챙긴 것이다, 사실 낚시를 가서 조과가 좋지도 않았다. 늘 안 좋은 조과를 기록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늘 허무한 기분으로 운전을 하고 와야했다. 그럼에도 다음날이면 또 낚시갈 준비를 했다. 마치 다른 일을 잊기 위해 여기에 집중하는 꼴이였다. 늘 안좋은 조과와 그에 따른 내 운에 대한 실망감, 나아가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나의 인생에 대한 분노까지 더해져 이제는 낚시를 가기전에 설렘마져 퇴색된 채 난 취미생활이 아닌 내 인생의 운을 확인하고자 마지못해 낚시대를 챙기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대왕문어에 대한 나의 집착은 6개월동안 계속되었다. 동해안 대왕문어는 보통 15키로가 넘는데 배에서 많이 나와야 3마리 남짓이였다. 20명이 타는 배에서 선택된 자만이 잡는 것이였다. 나는 대왕문어를 잡으면 인생이 잘 풀릴것 같다는 쓸데없는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집착으로 변했다. 하지만 쉽지않은 과정이였다. 우선 대전에서 동해는 운전만으로 4시간이 걸린다. 왕복 8시간을 넘게 운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왕문어를 낚을 수 있는 확률이 너무 적었다. 배에서 8시간을 낚시하면서 작은 문어 한 마리도 건지지 못했던 적이 많았다 오히려 옆자리에서 나오고 한 사람이 두 마리씩을 잡아갈때면 나의 운에 대한 실망감에 집에 오는 길이 더욱 힘들고 멀었다.
"무슨 의미를 찾기 위해 나는 낚시를 하는 걸까"
집에 오는 운전하는 차안에서 나는 늘 나에게 반문하기 시작했다. 취미가 더 이상 취미가 아니라 어쩌면 무의미한 인생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였다. 그러던 중 참다못한 집사람이 나에게 나에게 화를 냈다
"당신은 중독이야. 병원가봐야돼"
화가 난 집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런 것 같다. 나는 지금 해야할 일들이 있는데 그것을 잊기 위해 다른일에 중독된 것이다. 회사에서의 낮은 자존감, 이직에 대한 준비,기술사 준비, 여동생 이혼문제, 경제적 어려움, 내가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이런 것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의미없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였다. 대왕문어를 잡는다고 나에게 닥친 문제들이 풀릴 리가 없었다. 이제는 집착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것 같았다. 집사람과의 언쟁 후 나는 집안의 모든 낚시대를 치워버렸다.
삶에 있어서 집착과 절실함의 차이는 무엇일까. 비록 낚시대를 치웠지만 대왕문어에 대한 내가 정한 삶의 의미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서는 계속 싸우고 있었다. 대왕문어에 대한 덪없는 집착과 삶의 의미를 찾고자하는 절실함이 계속 싸우고 있었다.
"포기하지 말고 한 번만 더 해보자. 그래도 안되면 내년에 다시 도전하면 되지"
나는 집사람을 설득해서 올해 마지막으로 한번만 낚시를 갔다오겠다고 말하고 장비를 챙겼다. 노인과 바다에서
"희망을 버린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어"
라는 말처럼 난 대왕문어가 가지는 내 인생의 상징성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비록 의미없는 집착일지라도 진짜 힘들 때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해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해에 도착하니 새벽 4시였다. 배는 6시에 출항이다. 잠깐 차에서 눈을 붙이려고 했지만 잠이 안왔다. 6시가 되어 배에 몸을 싣고 바다로 나아갔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안 잡히면 그것은 나에게 무슨 의미인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두려웠다. 어차피 낮은 확률에서 나오는 대왕문어가 나에게 오리라는 것은 더욱 힘든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왕 도전한거니 기분좋게 희망을 놓지 말자"
나를 다독여보았다. 그리고 낚시는 시작되었다. 1시간이 흘러도 입질한번 받아볼 수 없었다. 초조했다. 2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난 아무것도 건질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왕문어를 잡을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든다. 많은 생각들이 나의 마음속에서 요동쳤다.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문제들, 그리고 내가 지금 힘들어하는 문제들, 그동안 내가 저지른 비정상적인 일탈들, 나로인해 상처받은 가족들, 과연 모든 것들을 내가 바로 잡을 수 있을까란 자신없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대왕문어가 안 나와주니 더욱 깊어졌다. 3시간이 지나자 옆자리에서 어떤 아저씨께서 입질을 받더니 힘들게 무언가를 끌어올렸다
대왕문어였다. 내 바로 옆자리였다. 나와는 불과 50센치 거리였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왜 나에게는 주시지 않는 겁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대한 화가 치밀어올랐다. 세상에 아무리 절실하게 원해도 안되는 것이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또 다시 대왕문어에 대한 집착으로만 끝날 것 같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30분이였다. 입항시간이 되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면 난 또 다시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향해야했다.
"마지막 30분이다. 30분안에 한마리 잡자. 잡을 수 있어"
그렇게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았고 내 인생의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이루어 보고 싶었다. 그것이 비록 의미없는 집착일지라도.....
"쭈아악"
그때 갑자기 낚시대가 아래로 "쭉"하고 휘기 시작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낚시대를 위로 쭉 올렸다. 확실한 훅킹을 하기위한 동작이였다. 묵직한 뭔가가 70미터 저 바다속 아래에서 잡아 당기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릴링을 했다. 손이 바르르 떨렸다. 바다속에서 올라오는 저게 무엇인지는 나와봐야 알겠지만 지금 나에게 찾아온 희망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니 무겁지 않았다. 손이 떨릴 정도로 무거운 것을 올리고 있었지만 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주위의 사람들도 모여서 무엇일까 구경하기 시작했다.
10미터, 7미터....
낚시줄이 감겨 올라올수록 무게감이 더해졌다. 드디어 바다속 저편에 그것이 보였다.
"대왕이다"
누군가가 소리쳐주었다. 하지만 나는 배위에 그것을 랜딩할때까지 신중해야했다. 선장님과 둘이 갸프질을 할 만큼 무거운 놈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배위에 랜딩하고 나서야 나는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하늘을 보았다
"희망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나지막히 말했다. 그 동안의 마음고생이 다 없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마음의 평화였다. 그동안 안 좋은 일만 생긴다고 마음고생을 했는데 이렇게 내가 원했던 좋은 일이 생기니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다.
잡고보니 대왕문어가 15킬로가 넘었다 . 배에서 제일 일 큰것을 잡았다 사실 그런 것은 나에게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대왕문어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놈을 잡기위해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었는지 모른다. 아무 의미없는 마음챙김이였지만 내 스스로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고 끝까지 기회를 기다린 내 스스로가 대견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 금요일 저녁시간대라 고속도로가 꽉 막혀 거북이 운행을 하고 있었지만 꽉 막힌 교통체증에도 난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오늘 따라 해지는 저녁 구름이 그렇게 예쁘게 보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