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의 겨울 짝꿍
결혼 전에 서로의 생활방식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봄에는 딸기가, 여름에는 수박이, 겨울에는 귤이 항상 냉장고에 있어야 한다.'
가 제 요구사항이었습니다.
진료실에 들어온 당뇨 할머니는 귤을 하루에 열개도 더 까먹었다며
검사 결과를 확인도 하기 전에 고해성사를 합니다.
맞습니다.
귤만큼 달콤하고, 까탈스럽지 않고, 평화로운 과일은 없을 것입니다.
재작년쯤이던가 한 농장으로부터 천혜향을 선물 받았는데 충격적으로 맛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계속 그 농장에서 만감류를 시켜 먹어요.
껍질은 차에 두면 방향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새콤달콤한 향기가 가득합니다.
황금향은 11월경 가장 먼저 출하되는 고급 만감류입니다.
과즙이 많은 것이 특징이고 약간 한라봉과 유사한 맛이 납니다.
레드향이 보통 그 이후에 출하되는데,
껍질이 황금향보다 붉은 편이라 레드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레드향은 껍질이 두껍고 살짝 퍼석해서 굉장히 잘 까지기 때문에,
저희 가정 내에서 인기가 제일 좋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만감류는 그보다 늦게 출시되는 천혜향입니다.
감귤과 오렌지가 합쳐진 듯한 달콤한 맛이 나는데,
처음 먹었을 때는 알알이 달콤한 폭죽 같은 맛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보다 늦게 출하되는 신비향이 만감류의 최고봉으로 알려져 있지만,
저는 천혜향을 제일 좋아해요.
요즘 딸과 자기 전에 동시집을 읽는데,
여름내 달을 사랑한 나무가 맺는 열매가 바로 귤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다음 책을 출간하게 되면 귤을 사은품으로 넣어드리고 싶을 만큼 귤을 좋아합니다.
노란 손끝으로 써 내린 이 짧은 글을,
향기롭게 읽어주신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