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맹신론자

다시 만나요

by 최유정

내 중학교 시절의 8할 이상의 지분을 차지하던 친구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일이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그렇게나 친했지만, 동성친구가 아니여서인지 그 친구의 가족들을 만나게 된 건 애석하게도 친구의 장례식이었다.


친구가 떠나고 나서야 친구의 아버지와 식사를 했고, 친구의 고모들과 하루를 보냈고, 친구의 동생과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마음 한편이 먹먹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친구를 기억할 수 있음이 감사했다.


그러나, 나를 마주하는 것이 친구의 가족들에게도 큰 아픔이자 슬픔일 것만 같았고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연락을 드리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렀을까, 간간이 소식을 주고받던 친구의 동생이 결혼 소식을 전했다. 가장 예쁘게 하고선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거기서 아버지를 뵈었다. 순간적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았고 아버지는 나를 전혀 못 알아보시는 것 같았다. 이미 눈물을 흘리는 채로, 아버지께 내 이름을 말했다.

아버지는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지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나를 안으시곤, 어떻게 왔냐며 한참을 우시다 이따가 보자며 가셨다.


걸음을 조금 옮기자 10년의 시간 동안 많이 약해지신 할머니께선 휠체어에 앉아 계셨고 그 옆에는 고모들이 계셨다. 나는 할머니의 휠체어 앞에 쪼그려 앉아 할머니를 쳐다봤고, 고모들과 할머니도 마치 처음 보는 처자의 쪼그림에 당황스러워하는 얼굴을 보이셨다.

"할머니, 저 유정이예요. 00이 친구."


내 말에 할머니와 고모들은 순식간에 눈물을 흘리셨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며 '동생의 결혼식인데 형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생각만 하고 다들 말을 아끼던 참이었는데 내가 와주었다고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계속 눈물을 훔치셨다.


그렇게 직계 가족 촬영 시간이 되었다.

친구의 동생은 나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친구의 가족들 모두 나를 향해 함께 손짓을 보냈다.

"누나가 당연히 올라와야죠! 누나가 올라와주세요!"

그 말에는 '형'이라는 단어가 빠져있었지만 명확하게 형의 존재가 있었다. 그곳에 있던 우리 모두가 차마 입밖으론 꺼내지 못했지만 가슴에 묻어뒀던 그 형의 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형의 자리에 올라갔다.


그날 이후, 나는 여전히 친구의 가족들과 이야기하고 연락하며 지낸다. 이번 명절에도 하루, 이틀은 친구의 가족과 보낼 생각이다.


그 친구가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맨날 놀기만 좋아했던 우리가 고등학교 때, 꿈이 생겨 같은 대학교를 가기로 결심했던 날이 기억난다. 우리가 덜 놀고 열심히 살았다면 아마 친구는 바다 근처에서 일하고 있었을 것 같다. 똥똥했던 몸은 술배가 더 나왔을 거 같고, 완전히 아저씨 얼굴을 지녔을 거다. 그런 아저씨가 되었다면, 그렇게 살아있었다면 30대의 나와도 친구를 계속해줬을까?


아주 가끔 이럴 때면, 크리스천인 내가 무당이 부럽기도 하다. 자칭 죽은 영혼을 보고 만나고 대화를 한다고 하니 아주 가끔은, 이렇게 어쩌다 그리움에 사무칠 때면 그렇게라도 보고 만나고 대화를 할 수 있을까 헛된 희망이 생기기도 한다.


아주 유치하지만 말이다. 내가 아직도 완전히 보내주지 못해서, 혹시나 이승을 떠돌고 있을까 봐 걱정도 된다. 근데 보내주는 방법을 10년이 넘도록 배우질 못했다. 어디서 가르쳐준다고 해도 사실 배울 생각도 없다.

잘 갔겠지, 그래서 잘 지내고 있겠지.


나는 오늘도 천국 맹신론자가 된다. 그래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 직계가족 단체사진 제대로 찍어줄 수 있을 테니까. 그때는 내가 멋진 사진작가, 화려한 헤어, 메이크업 아티스트까지 되어서 예쁘게 찍어줄 것이다. 그러니까, 꼭 천국에 잘 도착해서 잘 지내고 있기를, 많이 늦게 가더라도 잊지 말고 마중 나와주기를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손이 세 개면 불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