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과 마음을 바라보며, 나를 다스리며 나이 들어갈 수 있기를
'요가'에 대한 기억
어렸을 적 내 몸은 유연했다. 어렸을 적이라면 사실 모두 유연했을지 모르겠지만, 두 다리를 머리로 걸치는 것이 어렵지 않았던 나에게 친오빠는 어렸을 적, 인도로 유학을 가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때가 대략 1992년도 정도였으니, 그때 인도로 정말 요가 유학이라도 갔었더라면 난 아마도, 한국의 요가를 선구적으로 소개한 1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여튼 요가는 어린 나의 머릿속에 인도에서 태생되었고,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야 되는 것으로 뇌리에 박혔었다. 기어코 우리 오빠는 어느 날 “넌 사실 아빠가 인도로 출장 가셨을 때, 인도에서 데리고 온 거야” 라고 해서, 그날 사실 확인을 위해서 아빠가 퇴근하기 전까지 울면서 아빠한테 확인했던 기억도 있다.
사실 오빠가 ‘인도에 가서 요가를 배워’ 라고 5살 어린 동생을 놀리려고 했던 말은 꽤나 영향력이 있었다. 요가가 뭔지도 잘 몰랐으면서 20대 초반 요가를 등록했다. 정적일 때는 분명 좋았었는데, 복근운동을 시키거나 하는 클라스의 경우는 힘이 들었었는지, 20대 초반에는 꾸준히 못했었던 것 같다. 30대 초반에는 운동을 하겠다며 신나게 클럽과 나이트를 다녔고, 나이가 아주 조금 보태져서 클럽과 나이트에 갈 기회가 줄어들자, 스윙댄스를 1년 정도 열심히 배웠었다. 그리고는 차츰 그룹 필라테스, 성인 발레 등을 배우며 몸의 활동량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다시, 요가
클래식과 함께 스트레칭, 유산소, 근력운동을 하며 가장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느꼈던 발레를 한창 하다가, 같은 시기 - 회사 일과 중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다시 요가를 시작했었다. 점심 시간에 하는 요가라 간단한 스트레칭 정도였는데, 그때 선생님이 처음으로 요가를 할 때의 자세, 몸의 정렬과 나 스스로 몸을 바라보는 법, 그리고 내 신체 상태에 맞춰 아사나를 하는 것에 대해서 (회사 동료들이 빠진 틈을 타, 거의 개인 수업 수준일 때) 알려 주셨었다. 그리고 그때 요가에 다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여러 사정 상, 점심시간 요가가 중단되고 발레만을 하던 중 – 요가가 채워주었던 무언가가 결핍되는 것 같아서 다니던 스튜디오를 바꿨었다. 거긴 필라테스, 요가, 발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었고 매우 만족하며 다녔지만, 어느 순간 “내가 운동을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의 노화를 급격히 체감하던 찰나, 이제라도 조금 더 전문적으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지도자 과정‘에 도전해봐야 겠다 생각했다. 여러 운동이 있었지만, 내 기준은 오직 하나였다.
“도구 없이도 나 스스로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을 하자”
요가지도자과정
그래서 몇몇 지도자 과정 옵션을 생각해봤었지만, 결국엔 요가였고 ’하타 요가‘로 선택하였다. 그렇게 선택폭을 좁혀도 요가원이 너무나도 많아 결정 장애가 왔었지만, 결론은 꾸준히 다닐 수 있도록 집 근처 요가원 “리본(Re-born) 요가원”을 선택하였다. 그렇게 나는 2020년 8월부터 요가지도자과정을 16주간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비록, 그 여정이 처음 내가 다짐하고, 마음먹었던 것 만큼 순탄하지도 않았고 열심히 할 수도 없었던지라 너무나도 속상한 점 투성이 였고 코로나19라는 2020년 전 세계인의 공공의 적 덕택에 순탄치도 않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요가원을 열수 없어 시험은 개별 시험으로, 수료식은 약식으로 대체될 수 밖에 없었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참 값진 과정이었다.
수업료가 비싸기는 하였지만 ’요가‘가 앞으로 내가 나이 들어가는 과정 안에서 얼마나 값진 무기와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더욱이 깨달아, 누가 그러듯 참 가치 있는 2020년의 소비였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는 시간>이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견뎌내고 마주하였을 때 단단해지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며 “요가라는 도구를 만나게 되고, 깊게 접근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로 몸은 건강해지고 마음은 평온해지면 좋겠다” 라는 수료식 날 아그니 선생님의 마무리 메시지는 생각지 못했던 부상과 통증, 그리고 코로나19로 내외부적 요인으로 나에게 16주 과정이 “어쩔 수 없는 시간”이기도 하였지만 – 그럼에도 ’요가‘가 내게 일상이 되어 나의 나이듦에 자리매김 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