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기
두 아이의 등교와 막내의 등원까지 마친 뒤 집에
오면 방을 정리하고 청소를 시작한다. 오늘도 청소기를 들고 이리저리 바닥을 청소하다가 문득 팬트리가 생각났다. 언젠가 정리해야지 생각하고 미루기만 했었다. 그 안에 쓰지도 않고 넣어둔 물건들을 꺼내어 처분하고 상자를 비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물건들을 쑤셔 넣어도 자꾸 밀려 나왔다. 그리고 팬트리 문을 열 때마다 그 상자들이 거슬렸지만 필요한 것만 찾아서 빼고 문을 닫아버렸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래도 정리를 해야겠다 싶어서 바닥 청소를 마치고 팬트리 문을 열었다. 자주 꺼내어 사용하는 물건과 식료품들 그 옆에 쓰지 않고 쑤셔 넣은 그 물건들을 쳐다보았다.
‘저것들을 다 꺼내어야 정리가 시작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먹었을 때 해야지 싶어 김장 봉투와 쓰레기봉투를 꺼내왔다. 그리고 의자를 가져와 제일 위칸부터 정리를 시작했다. 위부터 차례대로 정리를 마친 후 가장 난도가 높은 아랫칸에 있는 그 문제의 박스들을 꺼내어 안에 있던 물건들을 봤다. 유통 기한이 몇 년은 지난 조미료와 왜 아직까지 가지고 있었는지 모를 이유식 스푼과 분유, 그리고 해마다 샀던 아이들의 물통들.
‘너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구나!’
과감하게 필요 없는 것들을 모두 쓰레기봉투에 넣고, 자리가 없어 아무 데나 쑤셔 넣어둔 물건들은 같은 종류끼리 분류해서 놓았다. 정리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뭐 그리 큰 변화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엄청난 정리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아서 인스타에서 볼 수 있는 사진들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정리를 마친 팬트리를 보며 마음이 개운해졌다.
그러다 생각해 보았다. 마음 정리도 그 과정이 어쩌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마음이 답답하고 어지러울 때 청소를 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닐까.
집처럼 마음을 쉽게 정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 그것은 쉽지 않다. 우선 정리를 하기 위해서는 그 안을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묵은 짐들이 잔뜩 쌓여있는 팬트리 문을 열어보는 것보다도 훨씬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안을 들여다봤을 때 실체가 없는 그것들을 어떤 방법으로 정리해 낼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가만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어질러지고 뒤섞인 것들을 세심하게 보아야 그것이 어떤 마음인지,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있다. 만약 내 마음의 방을 어지럽히던 것이 슬픔이었다면 그 슬픔은 어느 상자에서 밀려 나왔는지 살펴봐야 한다. 어떤 일의 실패 때문인지, 내 몸이 아파서인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인지,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인한 것인지,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등등 여러 상자들을 살펴보며 그 슬픔의 원인을 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상자 밖으로 그 슬픔을 밀어내었던 원인이 되는 일을 해결하거나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상자를 비우고 슬픔이라는 감정은 잘 정리하여 상자에 다시 넣어두어야 한다.
살펴보니 지금 내가 지니고 있지 않아도 되는 감정이었다면 과감히 쓰레기봉투에 넣어야 한다. 만약 타인이 단순히 나의 감정을 해치기 위한 악의적인 말로 내 마음을 다치게 했다면 나는 그것 때문에 우울과 분노를 마음에 품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 따위 말로밖에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없는 그 사람과 그 말에 대한 생각은 상자에서 쏟아버리고, 그로 인한 감정들은 미련 없이 쓰레기봉투에 넣고 꽁꽁 묶어서 내다 버려야 한다. 그런 감정을 내 안에 두고 괴로워할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다.
물론 어떤 일을 겪어내느라 가지게 된 감정을 물건 정리하듯이 단시간에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원인을 확인하고 감정을 정리하는 동안 그것이 내 몸과 마음 모두를 어지럽히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말해둬야 한다. 이 감정은 저 상자에 들어있는 것이고 저 상자들은 내가 인생을 살아가며 마음속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것들을 모두 없앤다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필요할 때 적당히 그것들을 꺼내어 느끼고 표현하고 다시 정리하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그리고 살다 보면 어떤 상자에서는 좋은 감정을 꺼내어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정리를 마치고 뭔가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위에 있는 팬트리 사진에서 보듯이 틀린 그림 찾기처럼 찾아보아야 변화된 곳을 조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전보다는 편해졌다는 것을, 그리고 나아졌다는 것을 천천히 느낄 수 있다.
마음의 방을 들여다보기 싫어서, 혹은 들여다보았어도 정리하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방을 청소하는 것에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 그러므로 집안을 청소하듯이 마음도 주기적으로 한 번씩 들여다보고 어질러진 마음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비워내야 한다. 그래야 그 방에 새로 들어올 물건도 감정도 자리를 잡기가 쉬워진다. 그리고 자꾸 새로운 것들을 들이고 겪어봐야 나에게 맞는 더 아름다운 방을 완성해 나갈 수 있다.
팬트리 청소를 마쳤다. 앗.. 그런데 옆에 나뒹구는 김치통 하나가 이제야 눈에 보인다. 어쩔 수 없다. 가끔 이렇게 해결하지 못한 것은 내가 잘 볼 수 있는 곳 한쪽에 두었다가 자리가 생기면 얼른 그곳에 정리하면 된다. 일단 김치통은 한 번씩 꺼내 쓰는 두루마리 휴지 아래에 넣어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