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짧은 쇼츠 영상 하나가 마음을 건드렸다.
드라마 수상한 그녀의 한 장면에, 오래된 가요 그 겨울의 찻집이 배경으로 흐르고 있었다.
보다 말고, 문득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 장면이 불러낸 건, 우리 엄마들의 시대였다.
자신을 깎아내어 자식을 키운, 불꽃 같은 헌신의 세월.
무언가를 원해본 적 없이, 늘 자식이 먼저였던 삶.
좋은 건 다 주면서, "나는 이 음식이 별로란다"
그 짧은 한마디에 아이가 마음 아파할까 걱정부터 하던 사람들.
작년 초, 혼자 계신 엄마 생각에 싱가포르에서 매일같이 식자재와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
엄마를 싱가포르로 모셔오려고 출장 일정을 일부러 늘려 귀국도 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동안 내가 챙긴 음식 덕분에 연금을 거의 쓰지 않으셨단다.
은행에서 찾은 돈은 손수건에 곱게 싸서 모아두셨고, 그걸 언니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다.그리고 싱가포르 로 오는걸 거부 하셨다.아마도 옆에서 아픈 손가락을 챙기려고 그러셨을것이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왜 어떤 자식은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엄마의 등에 올라타 있을까.
이미 충분히 드렸어야 할 걸, 이제라도 돌려드리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엄마는 늘 더 약하고, 더 못난 자식에게 마음을 주신다.
어쩌면 그것이 독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속이 먹먹하다.
엄마가 한평생 고생만 하다 가시는 게, 너무도 안타깝다.
이제는 제발, 엄마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면 안 될까.
마음껏 쉬고,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시면서.
어쩌면 정말로 ‘청춘 사진관’이란 곳이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엄마를 스무 살로 데려가고 싶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바람 좋은 날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그 시절엔 정말 예쁘셨으니까,
누구보다 눈부시게 웃는 청춘을 다시 살아보게 해드리고 싶다.
이 글을 쓰며 또 울고 있다.
하지만 이 눈물은 그저 슬픔만은 아니다.
오래된 그리움, 닿지 못한 마음, 그리고 끝내 하지 못한 말들이 녹아 흘러내릴 뿐이다.
엄마가 되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좋은 미래를 바라는 마음에 엄격해질까 두렵고,
하고 싶은 대로 살게 해주고 싶으면서도 그 앞날이 걱정된다.
아이가 잘못되면, 언제나 엄마 탓이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는 어떻게 걸어도 늘 정답이 없다.
하지만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건
아이를 향한 사랑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