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뉴스를 보았다.
중국의 한 지방에서 가스계량기 측정 업무로 두 사람을 채용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베이징대와 에든버러 대학을 졸업한 인재였다는 것이다.
순간, 이게 진짜 뉴스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며칠 전엔 친구가 이야기했다.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한 아이가 아직 취업을 못했다고.
경제가 어려운 건 알았지만, 이제는 정말 구조적으로 무언가 고장난 게 아닐까 싶었다.
졸업생이 너무 많은 건지, 아니면 기업들이 더는 인재를 원하지 않는 건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리 아이들의 진로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되었다.
‘자기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 그런 게 진짜 직업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 창의력이 풍부한 작은 아이는 스스로 설계나 디자인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큰 아이는 바이올린을 배운 지 6개월 만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실력이 늘었다.
하지만 작은 아이는 음감은 있어도, 연습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물었다.
“너, 바이올린 계속할 거야?”
잠시 망설이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가 결정해주세요. 하지만 만약 계속한다면, 언니랑 비교는 하지 말아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결심했다.
바이올린은 그만두자.
그리고 그림에만 집중하자.
사실, 외할아버지는 화가였다.
사람들 초상화를 그려주고, 화투도 직접 그려 팔았다.
하지만 어느 날, 술수에 넘어가 황소 여덟 마리를 통째로 빚으로 날리는 일이 있었다.
그날 이후, 집안은 그림과 담을 쌓고 살게 됐다.
엄마도 그림을 잘 그렸지만, 붓을 놓았다.
나 역시 그림에 관심이 많았지만, 엄마는 늘 단호하게 말했다.
“그림 같은 건 입에 올리지도 마.”
어쩌면, 엄마도, 나도
화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 아이에게만큼은
그 족쇄를 풀어주고 싶다.
그림을 그리지 말라는 명령,
예술을 두려워하게 만든 집안의 침묵,
그 오래된 금기를
이 아이의 손끝에서 끊어내고 싶다.
이 아이가 즐거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그건 단단한 방패가 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날개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