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 살던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던 화실이 있었다. 매주 토요일이면 아이들과 함께 정해진 시간에 가서 7시간, 때로는 10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일상 속의 작은 탈출이었고, 오롯이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싱가포르에 온 지 벌써 5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단 한 번도 화실에 가볼 여유가 없었다. 어떤 이는 ‘시간이 없다’는 내 말을 핑계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단순한 시간보다 더 본질적인, 정신적인 여유가 필요하지 않은가. 마음이 조급한데 어떻게 붓을 들 수 있을까.
서울에 살았다면 아마 홍대 어딘가의 수강반에라도 등록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스케치 실력도, 창의적인 색채 감각도, 많이 부족하다. 동물을 그리다 보면 자꾸 사람의 눈동자를 넣게 된다. 그 결과, 이게 강아지인지 인면견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가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은 한 번도 사그라든 적이 없다. 그 마음만은 늘 나와 함께 살아 있다.
나는 빈센트 반 고흐를 무척 좋아한다. 그의 그림은 전문적인 세밀함은 없지만, 묘하게 끌리는 힘이 있다. 그만의 독특한 결이 있고, 거친 붓질 속에서도 감정이 흘러나온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잘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나를 닮은 그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솔직하게 담아내는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