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할아버지 편
제 아이들의 왕할아버지, 그러니까 남편의 할아버지는 세 명의 부인을 두셨고, 자녀만 스물일곱 명을 두셨다. 지금 저출산 시대에 이런 분이 계셨다면 대통령 표창감이다. 한 집안이 아니라 거의 하나의 마을을 창설하신 셈이다.
왕할아버지는 1890년대 말, 그 시절엔 ‘남양(南洋)’이라 불리던 싱가포르에 정착하셨다. 리콴유 초대 총리와 고향이 같으셨다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둘째 부인의 장남은 훗날 리 총리의 비서로 일했고, 차남은 말레이시아의 관료로 승승장구했다. 내 시아버지는 인자한 중국어 선생님으로 평생을 보내셨고, 몇몇 자녀들은 훌쩍 호주로 이민을 떠나 대륙 간 가계도를 완성했다.
나는 남편과 결혼하면서 이 ‘왕족급 대가족’의 첫 모임에 참석했는데, 친척들의 이름과 관계도를 외우는 게 마치 왕실 족보 시험 같았다. 가족 모임이 거듭될수록 나는 점점 숨이 막혔고, 마침내 짐을 싸서 내 직장이 있던 상하이로 달아났다. 아마도 그때의 도피가 나를 상하이에서 25년간 눌러앉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던 것 같다.
명절이 다가오면 더한 전투가 기다렸다. 세배돈 봉투를 30개 넘게 준비해야 했으니, 그건 거의 세뱃돈이 아니라 추석 보너스 수준이었다. 이쯤 되면 대가족이 아니라 하나의 인구통계 샘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