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한 포기의 온기

by 지로 Giro


싱가포르의 햇살은 언제나 뜨겁고 환하다. 그 아래서 나는 이국의 부엌에서 묵직한 마음으로 김치 한 포기를 정성스레 싸서 큰아이 손에 들려 보냈다. 오늘 아침, 그 아이는 평소 가장 친한 친구에게 김치 한 포기를 배달하는 심부름꾼이 되었다.

그 친구의 엄마, 닥터이자 지성인인 그녀는 내가 전한 김치 레시피대로 정확히 계량하고 만들어보았다 했다. 그런데도 맛이 다르단다. 어딘가 잘못된 것 같다고.


나는 속으로 웃었다. 김치라는 건 숫자로만 맞출 수 없는 요리다. 날씨, 배추의 숨결, 담그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들어가야 비로소 익어가는 음식. 그러니 어쩌면, 그 집의 김치는 아직 그 집만의 시간을 기다리는 중일지도 모른다.


김치를 담그는 일은 이제 내게 일종의 의식이 되었다. 호주산 금배추를 꺼내고, 한국에서 공수한 젓갈과 고춧가루를 아낌없이 풀어 넣는다. 이국의 작은 아파트 주방에서, 나는 고국의 사계를 한 포기에 담아내기 위해 온몸을 움직인다.


한때 나는 많은 김치를 만들어 주변에 선물했다. 어떤 이는 나의 정성을 고스란히 밥상에 올렸고, 어떤 이는 김치만두로 변형해 먹었다. 그분은 어쩐지 아쉬운 눈치였지만, 나는 다시 그에게 김치를 건네지 않았다. 김치 두 번에 만두 두 번. 마치 밑 빠진 항아리에 물 붓는 느낌이었다.


물론 준 다음에 그걸 어떻게 먹느냐는 그분의 자유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어떤 마음은 전해지지 않을 때, 그리 쉽게 또 퍼주지 못하는 법이라는 걸.

조금 쪼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담그는 김치는 값으로만 따질 수 없는 노력이 들어간다. 시간이 들고, 마음이 들고, 정성이 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누군가의 따뜻한 한 끼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오늘 아침, 나는 다시 생각했다. 이 레시피를 조금 더 간단히 만들 순 없을까.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의 맛을 전할 수 있도록, 내 손길을 덜어내고도 따뜻함은 그대로 담을 수 있도록.


싱가포르 사람들은 한국을 참 좋아한다. K푸드, K뷰티, K드라마, K팝…

그 모든 "K"의 뿌리에 ‘정(情)’이 있다면, 내가 만든 이 김치 한 포기도 작지만 분명한 "K"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작지만 진심을 다해 ‘정’을 담는다.

김치 한 포기에, 한국을, 나의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