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딸, 그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
나는 늘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유명한 대학에 합격한 그날, 내 이름은 단번에 가족의 자랑이 되었고, 동시에 아빠도 일약 스타가 되었다. 평생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직장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던 정직한 아빠는, “저렇게 훌륭한 딸을 키운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며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
나 자신도 자부심이 있었다.
한 번도 학원 수강조차 하지 않았고, 오로지 오기로, 내 힘으로, 스스로의 길을 개척했다. 위로는 언니, 아래로는 남동생. 모범생이었지만 늘 '샌드위치'처럼 중간에 끼여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훗날에는 용돈도 드리고, 친가와 외가 식구들까지 챙기는 '든든한 존재'로 성장했다.
아빠는 그게 참 좋으셨던 것 같다.
항상 싱글벙글 웃으셨고, 어디 가서도 내 자랑을 빠트리지 않으셨다.
"우리 딸, 상하이에서 자리 잘 잡았지."
말씀하실 때마다 아빠의 어깨가 조금 더 넓어 보였다.
그 즈음, 아빠도 퇴직을 하셨다.
멋진 은퇴 생활을 꿈꾸셨지만, 옛 직장의 잦은 술자리는 결국 간에 무리를 주었고, 퇴직 직후 받은 진단은 간암이었다.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고, 다시 입원하는 일이 반복됐다. 마치 내가 어렸을 때 병약하던 시절로 되돌아간 듯, 아빠는 그렇게 자꾸 병원으로 되돌아갔다.
2006년, 그날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온종일 마음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찜찜한 기운이 따라붙는 날이었다. 하루 일을 마치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거실을 왔다 갔다 걸었다. 창문 너머로 부는 밤바람에 커튼이 살랑거렸고, 그 바람 틈에 아빠의 기척이 느껴졌다.
“혹시… 지금, 아빠가 내 옆에 있는 건 아닐까…”
억지로 잠을 청해보려 침대에 다시 누웠을 때, 벨소리가 울렸다.
새벽 4시 15분.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아빠가… 운명하셨어…"
암 진단을 받은 지 6개월, 너무나 짧았던 시간.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아빠의 딸이라는 그 이름.
그건 내게 자부심이자, 책임이었고, 사랑이었다.
이제는 아빠 없이 살아가지만, 그 이름은 여전히 내 삶의 가장 깊은 곳에 살아 있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그 이름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