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심과 손맛

위대한유산

by 지로 Giro

해외에서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수십 년이 흘렀다. 말이 좋아 이국생활이지, 실상은 늘 고군분투의 연속이었다. 곤경에 빠질 때마다 누구 하나 손 내밀어주는 이 없이, 오롯이 나 혼자 해결해야 했다. 낯선 언어, 낯선 문화 속에서 눈물 삼키며 버티던 어느 날들엔,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나를 붙잡곤 했다.


부엌 가득 퍼지던 된장의 구수한 냄새. 커다란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던 찌개, 숯불에 살짝 구워낸 보리굴비의 고소한 향. 그리고 강원도 산골 특유의, 젓갈 없이 담백하게 익힌 김치 한 접시. 그 모든 것이, 고단했던 하루를 달래주던 엄마의 손맛이었다. 나는 그 맛을 기억하며 나도 뚝딱 찌개를 끓이고, 조용히 밥을 지었다. 밥상 앞에 앉아, 나는 밥심과 오기로 또 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나는 점점 강해졌다.


이제 나는 엄마다. 예전의 엄마처럼, 아이들의 하루를 버텨낼 힘이 되고 싶다. 인생이 언제 어떻게 아이들을 시험할지 알 수 없기에, 나는 오래 전부터 그들에게 무언가를 쥐여주고 싶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붓을 쥐게 했다. 연주와 그림 속에 마음을 담는 법을 가르쳤다. 누군가 대신 싸워줄 수는 없지만, 그들이 자기만의 방법으로 세상과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랐다.


오늘 아침도 나는 아이들 도시락을 싸며 생각에 잠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퍼 담으며 문득 깨닫는다. 내가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것은 단순한 재능이나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곤경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근육, 눈물나게 힘들 때 문득 떠오르는 따뜻한 기억, 그리고 자신을 지켜주는 ‘무언가’다.


내가 엄마에게서 받았던 손맛처럼, 나도 아이들에게 그런 기억 한 조각을 남겨주고 싶다. 언젠가 그들이 삶의 모서리에 부딪힐 때, 아침밥 짓는 내 모습이나 주방 가득 퍼진 된장의 냄새가 떠오르길 바란다. 그리고 그 기억이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