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탈출 계획을 세웠다

by 지로 Giro


딸이 무너지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말이 줄었고, 웃음은 사라졌다.

무릎을 다친 이후부터, 아이는 체육에도 나가지 않았고, 식욕은 줄었지만 체중은 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는 말했다.

"엄마, 나 여기서 나가고 싶어."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그 학교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와야겠다고,

이제는 계획을 세울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전학을 목표로 상위권 학교들을 조사했다.

교육청과 목표 학교의 교감에게 정성껏 이메일을 썼다.

왜 우리가 국제학교에서 로컬 학교로 왔는지,

중학교 입시 첫날 무릎을 다쳐 시험을 망친 일,

그럼에도 지금 아이가 잘해내고 있는 분야들에 대해,

가감 없이, 담담하게 적었다.


사실 중학교 1학년이 시작되던 때,

딸이 자꾸 울먹이기에 아이가 배정받은 학교의 교감 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러나 교감은 냉담했다.

말에 온기가 없었고, 눈빛에는 책임이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탈출을 결심했다.

아이를 이 학교에서 꺼내야만, 내 아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폭력은 서서히 시작됐다.

아이를 향한 말들, 시선들, 외면들.

그건 상처보다 오래 남는 것들이었다.


나는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모자란 과목은 과외로 보충하고,

자신 있는 바이올린은 더 몰입하게 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아이는 점점 집중을 되찾아갔다.


그 즈음, 한 상위권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시험 보러 오세요.”


우리는 함께 기뻐했지만, 아이는 다시 이상한 증세를 보였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고 했다.

불면이 이어졌고, 눈빛이 가라앉았다.


처음 찾은 의사는 아이를 잠시 밖으로 내보낸 뒤, 내게 조용히 말했다.

“어머님, 우울 증세가 의심됩니다. 정신과 예약 도와드릴까요?”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그 다음, 침착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MRI부터 찍겠습니다.”


나는 내 딸을 너무 잘 안다.

그 아이가 지금 원하는 건, ‘나는 괜찮다’는 신호 하나였다.


MRI 결과는 정상이었다.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이를 데리고 나가

매일 일정한 시간에 달리기를 하고, 산책을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걷고, 함께 땀을 흘렸다.

햇살을 같이 맞고, 바람을 같이 들이마셨다.


3개월쯤 지나자, 아이는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점점 줄였다.

살은 서서히 빠졌고,

표정엔 조금씩 빛이 돌았다.


그때부터 나는 알았다.

아이를 바꾼 것은 학교도, 시험도, 약도 아니었다.

함께 걷는 시간, 아무 말 없이 곁에 있는 마음,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었다.


나는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 안에

우리 둘의 싸움과 회복이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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