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vs 인간, 맥리치 하이킹 전쟁

by 지로 Giro


오늘은 큰아이와 함께 “우리 좀 걷자” 하고 시작한 하루였다. 그런데 그 걷기가 11km에 4시간 가까운 대장정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맥리치 저수지에서 부킷 티마 힐까지, 지도에서 보면 그냥 얇은 선인데, 막상 그 선을 따라 걷다 보니 다리가 풀리고 입에서는 헉헉 소리가 절로 났다.


처음엔 트래킹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 “우리가 이 숲의 주인인가?” 싶었다. 가끔 멀리서 “위잉~”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면 벌목공들이 나무를 자르고 있었고, 그 소리에 맞춰 나도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벌목공은 나무를, 나는 나를 베는구나…”


그런데 진짜 긴장감은 원숭이들 등장부터 시작됐다. 처음엔 귀여운 동물 구경이라며 사진도 찍고 손을 흔들었는데, 얘네들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너 거기 뭐 들었니? 혹시 생수? 바나나? 아니면 젤리?” 하는 눈빛.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지팡이용 나무막대기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슬쩍 원숭이들을 향해 휘적휘적. 놀랍게도 녀석들이 “어이쿠, 저 인간 좀 하는군?” 하는 듯 비켜주었다. 하지만 지팡이가 없을 때는 상황이 반전. 등 뒤에서 원숭이들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다가오며, 마치 영화 속 도둑떼처럼 “조용히 가방 열어봐라” 하는 것만 같았다.


이때 큰아이가 내 등 뒤로 숨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혹시 우리 산길에서 털릴 수도 있는 거야?”

“걱정마. 엄마는 오늘부터 지팡이 달인이다.”


계속 걷다 보니 등산길은 끝도 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었다. 마치 지구가 우리를 시험하려는 듯, 올라가면 바로 내려가고,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고. 발밑은 돌멩이 천지라 무릎도 슬슬 아프기 시작했다. 멧돼지 경고 표지판까지 나오자, 큰아이가 한마디 했다.

“엄마, 우리 혹시 여기서 야생의 맛을 체험하는 거야?”

“그래, 이건 야생의 스파르타 코스야. 살아남으면 전설이 될 거다.”


마지막 생수 한 병을 아껴가며 거의 탈수 상태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이 코스 안 와. 절대 안 와!”


그러면서도 은근히 내일 다리에 알배길 생각을 하며, 오늘 하이킹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원숭이들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우리를 경계하며, 때로는 협박하며, 때로는 귀엽게 바라보며 인간과 동물의 치열한 심리전을 펼쳤다.


“맥리치부터 부킷 티마까지, 인간과 원숭이의 대결은 오늘도 무승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