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내 안의 숲이다.
그 숲에는 계절이 없다.
겨울의 서늘함과 여름의 향기가 한데 섞여 있고,
낙엽처럼 떨어진 얼굴들과 바람에 흩어진 말들이
나무 사이를 헤매며 아직도 나를 부른다.
그 숲을 걸을 때면, 나는 오래된 그림자를 밟는다.
그림자는 내 과거의 형태를 닮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언제나 조금씩 다르다.
아마도 기억이란, 진실의 복제본이 아니라
감정으로 현상된 흑백사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빛이 너무 강하면 색이 바래고,
어둠이 깊으면 모서리가 번져버리듯,
기억도 그렇게 불완전한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나는 종종 그 숲속에서 길을 잃는다.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이정표처럼 들리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지만,
막상 도착하면 그 웃음은 이미 사라져 있고
대신 시간의 이끼가 쌓여 있다.
기억이란 그런 것이다.
잡으려 하면 흩어지고, 흩어진 자리에
새로운 의미가 자라난다.
가끔은 그 숲에 비가 내린다.
비는 오래된 상처 위를 부드럽게 두드리고,
묻어두었던 눈물을 다시 불러낸다.
나는 그 비를 맞으며, 내 안의 낡은 나무들이
천천히 숨 쉬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는 내 인생이 여전히 자라고 있다는 신호다.
잊었다고 생각한 기억들도,
사실은 깊은 뿌리 아래에서
조용히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기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그건 지금의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아직 오지 않은 나를 예감하는 그림자다.
우리는 기억으로 되돌아보지만,
사실은 기억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한강이 말했듯,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꿔 남을 뿐이다.”
그 말처럼, 잃어버린 줄 알았던 순간들은
언젠가 내 말 속에, 내 눈빛 속에,
다시 다른 이름으로 피어난다.
그래서 나는 이제 기억을 붙잡지 않는다.
대신, 그것들이 흘러가도록 둔다.
강물처럼, 달빛처럼,
조용히 흐르며 내 마음의 바다를 채우도록.
그리움도, 후회도, 사랑도 결국은 같은 물의 형태로
나를 다시 적시고, 새로운 생명을 틔운다.
앞으로의 5년, 나는 이 숲을 더 따뜻하게 가꾸고 싶다.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이들에게는 그 손길을 배로 돌려주고,
어려운 길을 함께 걸어준 친구들처럼
누군가에게 빛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억 속의 따뜻함이 내 미래의 방향이 되어,
나는 다시 걸어가리라 —
이 숲이 더 푸르고, 더 깊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