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위로는 다섯 살 많은 언니가 있었고, 아래로는 다섯 살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언니도, 동생도 학업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가난은 우리 집의 배경음악처럼 늘 깔려 있었고, 나는 그 속에서 유일하게 더 먼 곳을 바라보았다.
세상의 끝이라도 좋으니,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마음 하나로 명문대를 향해 달렸다.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모두 스스로 감당해야 했기에, 나는 낮에는 강의실에 앉아있고 밤에는 주방과 카운터를 전전했다. 피곤에 절은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올 때면, 거울 속의 내 눈빛이 더 단단해져 있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렇게 내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갔다.
졸업 후, 운 좋게 들어간 영국계 회사에서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했다. 야근이 반복되고, 주말에도 호출이 끊이지 않았지만, 나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 시간들이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 믿었기에.
그리고 마침내, 내 이름으로 된 60평대 아파트를 마련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안도했다. ‘이제는 조금 쉬어도 되겠지’ 하고.
하지만 그 순간, 다른 문들이 열렸다. 외삼촌 댁, 이모 댁, 언니네, 동생네까지 — 그들의 삶에 나는 마치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구조물처럼 끼어 있었다. 도움은 의무가 되었고, 희생은 미덕이 아니라 전제였다.
나는 그들의 무게를 짊어진 채, 다시 걸어야 했다.
세월이 흘러 그들의 형편이 나아졌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받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내가 가진 것을 부러워했고, 누군가는 내가 없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존재는 점점 투명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