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책상 위, 불빛은 내 안의 심장을 비춘다.
모니터 속 흰 화면이 내게 속삭인다.
“오늘도 네 얼굴을 벗길 준비가 되었느냐.”
나는 잠시 머뭇거린다.
단어 하나를 쓰려다 지우고,
문장 하나를 세우려다 다시 허문다.
글을 쓰는 일은,
몸의 상처가 아니라 마음의 살점을 벗기는 일이다.
그 벗겨진 자리에 공기가 닿을 때,
비로소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1. 사랑받고 싶은 사람의 글은 금세 시든다
나는 오랫동안 글을 잘 쓰고 싶었다.
칭찬을 받고 싶었고, 이해받고 싶었다.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반짝이고 싶었다.
그래서 내 글은 늘 ‘예쁘게’ 써야 했다.
비유는 단정했고, 문장은 가지런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글은 시들었다.
봄날의 꽃이 아니라,
진공 속의 조화처럼 향기가 없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사랑받고 싶은 연기’를 하고 있었다.
진짜 글은 타인의 박수에서 피어나지 않는다.
내 안의 고요한 진실에서 피어난다.
2. 완벽을 기다리는 사람은, 평생 첫 문장을 쓰지 못한다
나는 수없이 ‘시작하려 했다.’
새 노트를 사고, 좋은 펜을 고르고,
첫 문장을 떠올리다 끝내 쓰지 못했다.
완벽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다.
내 안의 두려움이 나를 가로막았다.
‘이 문장이 어설프면 어떡하지?’
‘내 생각이 너무 평범하면 어떡하지?’
그 질문들이 내 손목을 잡고,
내 글을 미완의 허공 속에 가뒀다.
나는 알았다.
글을 쓰지 못하는 건 기술의 부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마주할 용기의 부재였다.
3. 아무도 읽지 않는 시간은, 신이 주는 은총이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렸을 때,
조회수는 ‘0’이었다.
댓글도, 하트도 없었다.
그때 나는 외로웠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고요는 축복이었다.
그건 세상이 내게 준 은둔의 작업실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으니
나는 마음껏 틀리고, 부서지고, 다시 쓸 수 있었다.
관객이 없는 무대에서,
나는 처음으로 진짜 목소리를 찾았다.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바람 속에서도 종이 냄새가 난다.
서툴고 투박했지만,
그 문장들이야말로 내 삶의 맨살이었다.
4. 글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어느 날 나는 방향을 바꿨다.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를 묻는 대신,
‘누가 내 글로 숨을 쉴 수 있을까’를 묻기 시작했다.
밤새 불안에 뒤척이는 사람,
상실의 구덩이에서 손을 내미는 사람,
삶에 지쳐 자신을 잃은 사람.
그들을 향해 나는 한 문장을 던졌다.
“괜찮아요. 당신의 고요에도 색이 있어요.”
그 순간, 글은 무대가 아니라
손을 내미는 행위가 되었다.
보여지려는 욕망은 사라지고,
보는 사랑만 남았다.
5. 부끄러움이 남아 있을 때,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
이제는 안다.
부끄러움이 사라진 글은 죽은 글이다.
나는 여전히 쓴다.
쓰면서 부끄럽고, 쓰면서 후회하고,
쓰면서 다시 쓴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 덕분에
나는 조금씩 더 인간이 되어간다.
창작은 벗겨내는 일이다.
하나의 문장을 쓸 때마다
‘가식’이라는 껍질이 벗겨지고,
‘진실’이라는 살결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나의 부끄러움이 나의 용기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6. 글은 언어의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다
글을 쓴다는 건,
세상에 “나, 아직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일이다.
한 줄의 문장이,
하루를 버티게 한다.
하나의 글이,
어제의 나를 위로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서툼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다는 징표이니까.
나는 오늘도 문장을 적는다.
잉크가 번지고, 마음이 따라 흐른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이건 아직 미완이야.”
그러나 나는 안다.
미완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형태라는 것을.
불 꺼진 방 안에서,
나는 조용히 노트북을 덮는다.
글이 끝난 자리에,
나의 진실이 앉아 있다.
그 진실은 작고, 떨리고, 투명하지만,
그것이 바로 ‘나’라는 이름의 빛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안다.
글쓰기는 상처가 아니라, 자유의 또 다른 이름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