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이 남긴 그림자

by 지로 Giro



도시는 언제나 빛으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나는 그 아래에서 오래도록 타오르는 그림자를 본 적이 있다.
2010년 상하이 중심부, 사람들이 삶을 층층이 적시며 살아가던 낡은 아파트가
한순간 거대한 횃불로 변한 날 —
그날, 58명이 불길 속에서 사라졌다.

뉴스보다 먼저 도착한 것은 바람을 갈라 울부짖던 사이렌 소리였고, 불과 두불록
발코니에 서 있던 나는 발을 동동 구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불은 너무 쉽게 번졌고, 사람들의 비명은 바람보다 빨랐다.
불길을 막아줄 단단한 벽도, 주민을 감싸줄 안전망도 없었다.
그곳에 남아 있던 것은 쉽게 연소되는 자재, 오래된 구조물, 그리고 방심으로 얼룩진 인간의 부재한 책임뿐이었다.

그날 이후 몇 해 동안, 나는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이름도 없이 사라지고,
불꽃이 벽을 타고 번지며 나에게도 금방 도달할 것 같은 꿈.
꿈속의 나는 언제나 그날의 발코니에 갇혀 있었다.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구할 수 없었던 무력함이 오래도록 내 밤을 태웠다.

그리고 15년이 지나, 홍콩에서 또 한 번 비슷한 비극이 일어났다.
128명의 삶이 연기처럼 지워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이미 오래전에 잦아들었다고 믿었던 불씨가
가슴 깊은 곳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두 도시는 서로 멀지만, 비극의 구조는 기이할 만큼 닮아 있었다.
낡은 외벽 공사, 타오르기 쉬운 자재,
그리고 **“설마 괜찮겠지”**라는 안일함이 만들어낸 거대한 연쇄.
그 불은 건물만 태운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던 믿음과 안전이라는 착각까지 함께 태워버렸다.

나는 이제 안다.
삶을 위협하는 건 거대한 운명이 아니라
작은 부주의가 쌓여 만든 틈에서 번지는 한 줄기의 불씨라는 것을.

그러나 그날 이후, 나는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불길이 남긴 트라우마는 오래도록 나를 흔들었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오히려 삶의 온도를 다시 배웠다.
소중한 사람을 더 꼭 안고, 하루를 조금 더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법을.

도시는 다시 빛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빛 뒤에는 늘 그림자가 있고,
그림자를 본 사람만이 빛의 귀함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을.

그날의 불꽃은 내 삶을 태우지는 못했지만,
내 마음 속에 단단한 문장 하나를 남겼다.

“안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새로 지어 올려야 하는 집이다.”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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