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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로 Giro

세상을 걷다 보면
가끔, 내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내 마음 안쪽까지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들은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그저 던진 말의 파편 하나로
내 하루를 흩뜨려놓는다.

말이라는 것은
가벼운 새깃처럼 내려앉기도 하고,
서늘한 칼날처럼 스치기도 한다.
우리는 그 작은 진동에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내면이라는 방은
그들의 그림자를 오래 붙잡아둘 만큼
넓지도, 차갑지도 않다는 것을.
그 방에는 내가 아껴온 빛,
여름 새벽의 공기 같은 희미한 온기,
그리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꿈들이
조용히 걸어다닌다.

그 방을
좁고 어두운 말 몇 개에게 내어주기에는
나는 너무 멀리 왔다.

비판은 어디에서나 자란다.
마치 틈새마다 스며드는 먼지처럼,
막아도 막아도 다시 생겨난다.
우리는 그 먼지를 털어내느라
자신의 시간을 잃어버리곤 한다.
그러나 먼지는 결국
빛이 스치면 사라지는 것들이다.

나는 이제
그 사라지는 것들과 싸우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말은 내 미래에 닿지 못할 것이고,
그들의 그림자는
내가 걸어갈 길에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의 나를 끌어안고 걷는다.
바람을 등지고,
말의 잔해를 뒤로 남겨둔 채,
내가 바라보는 쪽으로만
천천히 발을 옮긴다.

언젠가 돌아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나를 흔들던 그 말들은
모래 위에 쓴 글씨처럼
파도 한 번에 지워질 만큼
작은 것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남아 있는 건
저녁빛에 물든 내 그림자,
그리고 끝까지 나를 지키려는
내 마음뿐이라는 것을.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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