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색

by 지로 Giro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내는 순간은,
빛이 비출 때가 아니라 그늘을 드러낼 때라는 것을
나는 살아오며 여러 번 배웠다.

어떤 이들은 다정한 말로 문을 두드리지만,
그 말 끝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의도를 보면
그 다정함이 얼마나 오래된 무늬인지,
혹은 방금 칠한 얇은 페인트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향해 돌풍처럼 몰아치던 그 찰나의 냉기—
그것만은 감출 수가 없다.
그 순간이야말로,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전부터 자라온
진짜 색깔이 고스란히 새어 나온다.

한 번 말을 낮추는 사람은
언젠가는 행동으로 마음을 꺾으려 들고,
한 번 나를 얕잡아보는 사람은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을수록 더욱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그들이 뒤늦게 건네는 사과는
물에 오래 담갔던 종이처럼 기울어져 있고,
그 안에는 미안함보다
계산된 온도가 담겨 있을 때가 많다.
‘아직 쓰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다시 접어 올린 종이배 같은 사과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부드러움을 믿기보다
그들의 날카로움이 드러났던 순간을 기억하기로 했다.
상처를 오래 품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나를 지키기 위해,
나의 미래를 누군가의 손에 내맡기지 않기 위해서다.

때로는 단호해지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럴 때는 겉으로는 고요히 고개를 끄덕이지만,
마음속에서는 아주 작은 등불 하나를 켠다.
그 등불은 말한다.

“기억하라.
그날의 표정, 그날의 말투,
그날 당신 마음에 떨어졌던 차가운 그림자를.
기억하되, 무너지지 말고—
조용히, 단단해져라.”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씩 어둠을 배우며 살아간다.

그리고 어둠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빛을 더 정확히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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