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

by 지로 Giro



사람은 가끔
자신의 그림자가
누군가의 발치에 닿아 있을 때
그곳이 자리라고 믿는다.

빛이 잠시 머문 방향을
집의 좌표로 오해하고,
기울어진 그림자 위에
몸을 눕힌다.

그러나 빛은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해가 움직이면
그늘도 함께 사라진다.

관계는 늘
말보다 먼저
기압으로 변한다.
공기가 얇아지고,
숨이 짧아질 때
이미 그곳은
사람이 오래 머물 수 없는 높이다.

우리는 종종
불이 꺼진 등대에
신호를 보낸다.
빛이 없다는 사실보다
아직 누군가 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더 오래 매달린다.

아픔은 떠남이 아니라
남겨진 쪽의 반복이다.
이미 식은 자리에
손을 다시 얹어보는 일,
재가 된 기억에
바람을 불어보는 일.

기대는
투명한 얼음 같다.
올려놓을 때는 보이지 않지만
체온을 맡기는 순간
금이 간다.

그래서 자리를 안다는 것은
무너짐을 피하는 기술이 아니라
스스로를 덜 다치게 하는 법이다.

사막에서 파도 소리를
귀에 대고 살지 않는 것,
철새의 그림자에
계절을 묻지 않는 것.

어느 날부터
나는 기다림을
바람처럼 놓아두었다.
붙잡지 않아도 불고,
붙잡으면 사라지는 것.

대신
발아래 흙의 온도를 살폈다.
내 발이 식지 않는 곳,
매일 같은 높이로
숨을 쉴 수 있는 자리.

꽃은
불러서 피지 않는다.
피어도 좋고,
피지 않아도
흙은 흙으로 남는다.
그리고
지나가는 눈길을
계절로 세지 않는다.
자기 속도대로
열리고, 닫힌다.

세상이 여전히
소음으로 가득 차 있어도
자리를 아는 사람은
소리를 키우지 않는다.

그는 이미
자기 안에
기후를 하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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