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큰아이의 시험 성적이 발표되는 날이었다.
학교 컨벤션홀.
형광빛 전광판 위로
우수한 학생들의 이름이 하나씩 떠올랐다.
빛은 밝았고, 이름들은 또렷했지만
나는 그 글자들 사이에서
숨을 고르는 법을 잊고 있었다.
한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
마침내 성적이 공개되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파도처럼 한 방향으로 움직였고
나 역시 그 흐름에 밀려
아이들 쪽으로 다가갔다.
그때
큰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짧은 미소,
그리고 아주 조용한 입모양.
“해냈어.”
그 한마디에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참고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풀리듯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눈물에는
점수보다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기다림과 불안,
말하지 못한 걱정들,
그리고 아이보다
먼저 흔들리던 나의 밤들까지.
그날 이후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아이의 인생에도
정답이 있다고 믿게 되었을까.
전광판에 오르는 이름,
숫자로 줄 세워진 성취가
아이의 시간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어쩌다 그렇게 확신하게 되었을까.
예전의 나는
‘틀리지 않게’ 키우고 싶었다.
뒤처지지 않게,
부족해 보이지 않게,
어디에 내놓아도
괜찮은 아이로 자라길 바랐다.
그래서 기다렸고,
비교했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성적표를 들여다보았다.
아이보다
내가 더 긴장한 얼굴로.
하지만 그날
아이의 미소를 보는 순간
알게 되었다.
이 아이가 견뎌온 시간은
전광판에 다 담기지 않는다는 것을.
점수 옆에 쓰이지 않은
수많은 흔들림과
다시 일어섬이
이미 이 아이 안에
쌓여 있다는 것을.
인생에는
아이에게도
정답이 없다.
다만 선택이 있고,
그 선택을 감당하는
각자의 시간이 있을 뿐이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고,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그 길 위에서
아이 스스로가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이다.
그날
나는 박수를 치며 울었지만
동시에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이제는
전광판보다
아이의 얼굴을 먼저 보겠다고.
숫자보다
아이의 숨결을 더 오래
기억하겠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남들과 다른 속도여도,
그 길이 아이의 것이라면
나는 그 뒤에서
조용히 걸어가겠다고.
그날 흘린 눈물은
기쁨이면서
놓아줌이었다.
아이의 인생을
조금 덜 붙잡겠다는
작은 연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