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감정에 휘둘리며 살아온 날들이 있었다.
말 한마디에 마음이 출렁이고, 표정 하나에 하루의 방향이 바뀌던 시절.
그때의 나는 늘 바빴다.
설명하느라, 이해받으려 애쓰느라, 괜찮은 사람이 되느라.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찾지 않는 시간이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화가 울리지 않는 저녁,
누군가의 기분을 살피지 않아도 되는 공백.
그 적막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마음의 온도를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은 고요하지만 공허하지 않다.
오히려 그 안에는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나의 감정들,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의 결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사람이 독처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탐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막은 때로 차갑고, 고독은 종종 깊지만
그 안에서 나는 더 맑아진다.
불필요한 말은 사라지고
불필요한 기대도 함께 걷힌다.
영원히 깨어 있고,
영원히 거리를 두며,
그래서 영원히 자유롭다.
나는 더 이상 타인을
내 상처의 해독제로 삼지 않는다.
기댐은 잠시 달콤하지만
의존은 결국 서로를 망가뜨린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만사와는 담담히 화해하고,
고독과는 조용히 공존한다.
이것은 체념이 아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끝까지 살아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든 상관없다.
무뎌진 칼이 되든,
날이 선 검이 되든.
아프다고 말하지 않아도,
괴롭다고 외치지 않아도
나는 이 운명과 끝까지 엉켜 살아갈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약이다.
누구에게도 머리 숙이지 않는다.
어떤 평가에도 소속되지 않는다.
이 낙척한 인생의 한가운데서
나는 여전히 노래하고,
여전히 나만의 방식으로 진형을 깬다.
우리는 너무 자주
타인의 기대에 값을 치르고,
남의 평가에 마음을 낭비한다.
그러다 정작 잊는다.
자신이 이 삶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이제 나는
‘착한 사람’, ‘참는 사람’, ‘맞춰주는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내려놓는다.
내 감정을 가장 위에 둔다.
미움을 받아도, 오해를 사도
그건 더 이상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그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그의 과제일 뿐이다.
나는 더 이상
힘주어 누구에게도 다가가지 않는다.
판단 속에서 위안을 구하지 않는다.
대신 내 세계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살아간다.
이 네 개의 문장을
나 자신에게 선물한다.
“이제 그만.”
과도하게 책임지던 나에게 멈춤을 허락하기.
“신경 꺼.”
세상의 소음에 조용히 음소거 누르기.
“나는 여기 있어.”
흩어진 나를 현재로 불러오기.
“탈신화.”
모든 라벨을 벗기고,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기.
진정으로
내 감정을 삶의 맨 위에 둔다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다.
그건 나를 오래도록,
지치지 않게 데리고 가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