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참외를 참 좋아했다. 노랗게 반짝이고 향긋한 참외는 마치 여름의 달콤한 비밀 같았다. 나는 참외를 씹을 때마다 그 속살까지 모조리 먹어 치웠다. 그러면 외할머니는 늘 웃으시며 “얘, 그러다 참외가 배 속에서 자라겠다”라고 핀잔을 주셨다. 나는 그 말이 진짜인 줄 알고 배를 쓰다듬곤 했다. 그때마다 배 속에 참외가 자라는 상상을 하며, 아이답게 깔깔 웃었다.
아버지는 여름마다 신선한 참외를 사 오셨다. 퇴근길 검은 비닐봉지 안에는 노란 참외가 숨어 있었고, 나는 봉지를 풀어헤치며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했다. 그 순간은 단순히 과일을 먹는 기쁨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손길을 느끼는 일이었다.
해외에서 살게 되면서 참외는 내게 특별한 그리움의 상징이 되었다. 한인 마트 진열대에 노랗게 빛나는 참외가 보이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달려갔다. 참외 한 알의 값은 결코 싸지 않았다. 싱가포르 마트에서 나는 참외 한 개에 6500원을 지불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커피 한 잔을 안 마시면 되지” 하며, 마치 작은 사치를 합리화하는 듯이. 비싸다는 이유로 멈출 수는 없었다. 그 노란 과일 안에는 내 어린 시절의 여름, 아버지의 검은 봉지, 외할머니의 웃음소리가 모두 들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우리집 아이들은 참외에 큰 관심이 없다. 나는 그 이유를 종종 생각한다. 아마 아이들은 참외의 맛보다는, 아버지의 손에 담긴 사랑을 몰라서일까. 그저 과일 그 이상의 의미를, 나는 어릴 적부터 참외에서 느껴왔던 것이다.
어제,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부엌에 조용히 참외 한 봉지를 두었다. 오늘 아침 나는 부엌으로 나가 그 노란 봉지를 보았을 때, 잠깐 멈춰섰다. 마치 아버지가 퇴근하며 내밀던 검은 봉지처럼, 그 안에 담긴 것은 단순한 과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남편의 사랑이자, 나를 향한 다정한 배려였다.
나는 여전히 참외를 집착하듯 좋아한다. 참외는 내게 단순한 과일이 아니다. 그건 어린 시절의 향기, 아버지의 사랑, 외할머니의 웃음, 그리고 지금은 남편의 다정함까지 품은 노란 빛깔의 그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