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례문화, 그 흰 벽 너머의 충격 ②

흰 천막을 피하는 여자

by 지로 Giro




그 뒤로 나는 흰 천막만 보면 도망쳤다.

멀리서라도 보이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멈추고, 멀찌감치 돌아갔다. 아마도 그날의 충격이 내 안에 깊이 새겨졌던 모양이다. 그저 이방인으로서의 놀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죽음의 존재감이, 너무 적나라하게 내 일상 한가운데로 밀고 들어온 느낌이었다.


심지어 연말이면 곳곳에 세워지는 새해 선물용 천막조차도 나는 기겁하며 피했다. 알록달록한 종이등과 음료 상자들이 가득한 그곳이, 언뜻 하얀 장막처럼 보이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그냥 선물 파는 데야” 하며 웃곤 했지만, 장난기가 발동하면 일부러 “또 귀신 나온다~” 하고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 진심으로 화를 냈고, 가끔은 울먹이기도 했다.


이쯤 되면 단순한 문화 충돌이 아니라, 어떤 깊은 심리적 금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국의 장례문화를 떠올려봤다.

죽음은 늘 조용하고, 조심스럽고, 감춰야 할 무엇이었다. 슬픔은 검은 옷과 하얀 국화꽃으로 감췄고, 상가집도 조심스럽게 방문했다. 아이들은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고, 음식을 먹을 땐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인사를 먼저 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죽음은 ‘삶의 저편’에 있는 것이지, 삶의 한복판에 펼쳐지지 않았다.


그런데 싱가포르에서는 달랐다.

징례식은 HDB 아파트 단지 에 천막을 치고, 며칠이고 계속된다. 불경이 울리고, 향냄새가 진동하고, 온 동네가 그것을 지나친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공동체 속에서 함께 슬퍼하고, 함께 보내는 문화였다.


나는 그 문화가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쩌면 앞으로도 영영 익숙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득, 내가 더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내 안의 익숙함이 무너지는 경험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벽을 내 안에 세우고 살아가고 있다.

죽음이 아닌,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 선 그 얇은 벽.

그리고 언젠가는, 그 벽 너머로 다시 천천히 걸어가 보게 될까.

그게 두렵기도, 조금은 기대되기도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싱가포르 의 장례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