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의 원작,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고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원자폭탄 개발을 진두지휘한 역사적 인물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평전임과 동시에, 2차 세계대전 전후 미국 사회를 다룬 역사서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초반부는 오펜하이머의 부모 세대부터 시작하여 그의 독특한 출생과 성장 배경을 여러 일화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나치 독일이 전쟁을 일으킨 뒤 미국이 승전을 위해 원자폭탄 개발(일명 ‘맨해튼 프로젝트’)에 착수하고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 오펜하이머가 임명되면서부터는 원자폭탄 개발과 사용을 두고 벌어진 논란들–인류 평화의 위기, 지식인의 책임, 안보를 내세운 극우 세력의 확산과 비판적 지성의 위축 등–이 폭발적으로 전개되며 몰입감을 높였다.
공저자인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이 이 책을 기획하고 저술하기까지 장장 25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 책에는 저자들의 개인적인 서술이 최소화되어 있으며, 상당 비중의 문장들이 실제 인물들의 증언에 기반한 1차적 자료들에서 발췌되었다. 방대한 자료에 담긴 기록들을 분석하고 활용하면서 오펜하이머와 그가 살아낸 시대적 정황들을 객관적이면서 생생하게 그려내었기에 더욱 흡인력이 있었다. (그러나 무려 1,000 페이지에 가까운 두께로 인해, 너무 재미있어서 숨 가쁘게 읽히는데도 절대 끝나지 않는 놀라움을 경험할 수도 있다.) 남다른 천재성과 리더십, 복잡다단한 배경과 우여곡절을 거친 오펜하이머라는 인물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 실화가 현시대와 맺고 있는 접점들에 좀 더 공감하고 감정이입하면서 읽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후자를 중심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첫 번째 접점, 인류사를 통째로 바꿀 만큼 파괴적인 기술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원폭 실험이 성공하자 엄청난 섬광과 열기, 폭발력을 가진 기술이 이제 자신들의 손을 벗어나 민간인들에게 사용될 것을 실감하면서 흥분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다. 일단 폭탄이 완성되자 이후 사용에 대한 결정은 주로 과학자들이 아닌 정부와 군대의 뜻에 따라 이뤄진다. 한 번에 도시 전체를 날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진 만큼 인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지만, 일촉즉발의 세계정세에서 핵무기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결정은 놀랍도록 비합리적으로 이뤄진다. 급기야 반공주의까지 가세하면서 오펜하이머를 비롯해 평화주의에 입각한 핵 사용을 외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억압된다. 이런 비이성적인 추세는 국가안보라는 명목 하에 급물살을 타고 미국 사회 곳곳에 침투하여 개인의 자유와 지성을 억압하고 평화를 위협한다. 그 사이 전 세계적으로 핵무기의 수는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한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원자폭탄’ 자리에 ‘인공지능’을 대입하게 됐다. 물론 ‘파괴력’만 지닌 원자폭탄을 여러 순기능과 잠재력을 갖춘 ‘인공지능’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류사를 바꿀 만한 영향력 있는 기술을 인류가 적절히 제어하지 못했을 때 맞게 될 혼란에 초점을 맞춘다면 오펜하이머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듯 보인다. 인공지능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영역까지 침투하면서 인간 존재를 근원부터 무너뜨리고 있다. 원폭 실험에서 처음으로 폭탄의 위력을 목격한 과학자들처럼, 인공지능이 창작한 놀라운 수준의 시와 소설, 음악과 미술 작품을 목격한 사람들도 놀라움과 두려움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심리적 충격으로만 보면 알파고가 이세돌 구단을 이겼을 때가 더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신기술이 가져올 변화의 파괴력에 비해 그에 대한 대비는 너무 낙관론에 치우쳐 있거나 각자도생의 방식에 내맡겨진 듯하다. 인공지능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인류에 미칠 영향이 원자폭탄보다 강할 수 있다. 챗GPT로 가열된 인공지능 열풍은 이미 일상 곳곳에서 혼란을 야기한다. 일례로 교육 현장은 여러 방식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데, AI의 과제 대필은 기본이요, 최근에는 생활기록부의 문구를 작성해 주는 AI프로그램이 있어 알음알음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의 입학 근거 자료가 AI로 대필되지만 이와 관련된 사용 지침은 없다. 인공지능이 가진 엄청난 잠재력에 비하면 이러한 문제는 귀엽기까지 하지만, 크고 작은 부작용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원자폭탄이 개발되자 과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 정치와 안보 책임자들은 이 무시무시한 무기를 어떻게 활용하고 제한할지를 두고 끈질기게 논쟁했다. 인공지능이 일상 곳곳을 침투하는 상황에서 더욱 우려되는 점은 기술 개발의 방향과 속도가 사익을 추구하는 IT기업들에 거의 전적으로 내맡겨졌다는 사실이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제대로 된 논의조차 갖지 못한 채 인류 전체가 질적으로 다른 세계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핵을 둘러싼 국가들 간의 평화적 관계 수립은 적기를 놓쳤다. 오펜하이머는 기존 무기들과 구별되는 원자폭탄의 특성에 기반하여 향후 바람직한 외교 관계를 내다봤다. 원자폭탄은 도시 하나를 잿더미로 만들 만큼 위력이 커서 전쟁에서 실사용이 어려운 데다, 무기 개발에 대한 국가 간 정보 교류가 막힌다면 불필요한 무기 경쟁을 부추겨 인류 전체를 핵전쟁의 위협으로 몰고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이를 근거로 원자력의 평화적인 관리를 위해 초국적 국제기구를 만들어 비밀주의를 최소화하고 각국이 원자력에 대한 주권을 일부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무기 보유국가들이 핵주권을 적정 수준 포기하는 데 협력함으로써 핵무기의 개발과 사용을 억제하자는 것이다. 원자폭탄을 개발해 낸 당사자로서 이를 평화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책임이 오펜하이머를 엄습했던 듯하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즉각 실현되지 않았고, 강대국들은 제각기 핵무장을 완료했으며, 인류는 핵전쟁의 위협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물론 선택받지 못한 역사는 미화되어 아쉬움을 남기게 마련이다. 오펜하이머의 주장대로 미국이 즉각 핵주권을 포기했을 경우 소련이 화답했을지, 또 다른 술수로 상황을 악화시켰을지는 알 수 없다. 결말이 밝혀진 상황에서 어떤 결정이 더 현명했는지 판단하는 것은 갈등의 한복판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것과는 별개로 다뤄져야 할 문제이다.
그럼에도 오펜하이머의 제안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과학적 이론, 국내외 정치 등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와 철학, 문학 등 인문학적인 통찰력을 바탕으로 최선의 방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더욱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려는 과학자로서의 지적 호기심과 개인적 야망에만 치우치지도 않았고, 전쟁과 이후 냉전 상황에서 상대국을 무력으로 강력히 압박해야 한다는 낡은 안보 관념에 갇히지도 않았다. 오펜하이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적국을 확실히 제거하여 일시적으로나마 자국의 안보를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다소 불안정한 상태를 감수하면서도 지속적인 대화와 타협을 통한 영구적인 평화 체제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이는 그가 어릴 적 비종교적인 유대인 학교인 ‘에티컬 컬처 스쿨’에서 배운 ‘윤리적 책임’이라는 덕목을 내면화하고 실천하고자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반대 측으로부터 계속되는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오펜하이머가 제시한 방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인류는 핵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극단적인 정책들이 최소한의 제어 없이 폭주하지 않았을까. 획기적인 신기술의 개발과 활용을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균형을 이루면서 발화되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같은 선상에서 인공지능이 바꿔놓을 세상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우려와 대안에 대해서도 더욱 많은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두 번째 접점, 거대한 권력과 사회의 압박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자기 양심을 지켜낼 것인가.
오펜하이머의 과거 공산주의 관련 행적은 일생 내내 그의 발목을 잡고, 결국 기밀 취급 권한까지 박탈당하는 수모로 이어진다. 훗날 원자력조사위원회의 ‘재판’ 과정이 부당한 절차와 허위 사실로 가득했음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극우인사들은 오펜하이머의 복권에 반발하며 그가 소련의 스파이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심을 철회하지 않는다. 권력자들에 의해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힌 상황을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결국 그의 ‘적’들이 바라던 판결이 내려졌고 과거와 달리 오펜하이머는 권력에 고분고분해졌다. 그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지만 신념이 담긴 메시지를 소신껏 발화하는 데에는 주저하게 됐다. 책에는 오펜하이머 외에도 과거 공산주의 관련 이력을 근거로 학계에서 쫓겨난 지식인들이 여럿 등장한다.
오펜하이머의 정치 성향은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좌파’ 정도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라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부모로부터 아낌없이 지원받았지만, 그의 관심은 자신과 같은 계급의 사람들에게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의 정치적 성향에는 청소년기에 받았던 교육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졸업한 ‘에티컬 컬처 스쿨’은 지성적이고 윤리적인 문화를 강조한 유대 계열의 학교로 “진보적이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학풍”을 갖고 있으며, 설립 주체인 ‘윤리 문화 협회’의 회원들은 미국 사회의 “인종 문제, 노동자 권리, 시민의 자유, 환경주의 등의 쟁점들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라고 한다. 오펜하이머가 졸업하던 해에 설립자인 애들러는 축사에서 “윤리적 상상력”을 발휘할 것을 당부하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를” 보라고 했다. 이 같은 진보적인 관점은 오펜하이머의 진보적 정치 성향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는 노동자들의 노동권 투쟁, 스페인 내전 등에 두루 관심을 갖고 동료들과 토론하고 필요할 때에는 기부금을 내기도 했다.
소련에서 벌어지는 참상 등을 접하면서 공산주의의 한계를 느끼고 관심에서 멀어진 후에도 계속해서 공산주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지인들과 교류했고,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국가 기밀 프로젝트의 총책임자가 되면서부터는 그에 대한 감시와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오펜하이머는 정체성이 확고한, 닫힌 집단에 소속되는 것을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관심을 자극하는 것은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영감을 주는 학문과 이론들이었다.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어 정체성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오펜하이머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공산당원들에게도, 정부의 안보 담당자들에게도 배신자로 여겨졌다.
오펜하이머의 독특함은 하나의 이론에 안주하지 않는 유연함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의 지향점이 개방성, 유연성, 상호 연결과 협력에 근거한다면, 그의 대척점에는 폐쇄성, 확정성, 단절과 대립이 있다. 원자폭탄이 개발된 뒤 미국 사회는 미소 냉전 체제가 강화되면서 그와 대척점에 있는 문화가 강화됐다. 국가로부터, 동료집단으로부터 의심받지 않는 손쉬운 방법은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헌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펜하이머는 하나의 분파에 소속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자신과 타인에게 빠르게 납득시키고 한 집단의 성원으로 인정받는 쉬운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그가 끝까지 견지한 것은 오로지 ‘윤리적 책임’이었다. 윤리적 책임을 다하는 과정에서 공산주의는 한때 그가 지지했던 사상이었지만 이후 전개된 공포 정치, 자유와 인권 박탈 등을 목격하면서 지지를 철회했다. 이는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비판적 성찰을 그치지 않으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지식인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시 미국 사회는 지식인으로 살아가기에 극도로 경직되어 있었다.
권력이 짜놓은 틀과 룰 앞에서 개인은 무력하기만 하다. 책의 청문회 장면은 오펜하이머 측과 그의 권한을 빼앗으려는 상대측(스트라우스) 간의 진실 공방이 직접 인용 형태로 빽빽하게 전개되어 읽는 것만으로도 숨통을 조인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관람한 지인들에 따르면 영화에서도 해당 장면은 숨 막히게 진행된다고 한다.) 오펜하이머의 기밀 접근 권한을 박탈하기 위해 시작된 청문회에서 사실 관계가 교묘히 조작된 정보들은 그가 반국가 인물이라는 결론으로 몰아갔다. 세월이 흘러 미국의 정세 변화와 동료 과학자들의 연대 선언 등을 통해 복권되지만, 오펜하이머는 예전만큼 활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이 반국가 세력이 아님을 입증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정부 입장에 반대되는 의견에 대해 침묵했다. 오펜하이머의 청문회 과정은 권력이 지식인의 소신 있는 발언을 제한하고 억압하는 전략의 전형이다. 그를 옥죄는 다양한 수사기법과 압박을 보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자행되는 공권력에 의한 개인의 자유와 인권 침해 사례들이 속속 떠올랐다.
지식인으로서 양심을 지키는 일의 고결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시대적, 사회적 억압으로 인해 양심적인 선택을 할 수 없을 때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적당히 타협해야 할까, 양심을 지켜야 할까. 기밀 취급 허가권을 박탈당했을 때 오펜하이머의 심정은 어땠을까. 적당히 타협할걸 후회했을까, 아니면 양심을 지켜낸 데 의의를 두었을까. 그의 심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에게 소신 있는 행동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일 또한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싶다.
김연수 작가는 백석 시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을 저술하면서 월북한 뒤 체제 찬양 시를 쓰라는 권력의 요구를 거부하고 비자발적으로 절필할 수밖에 없었던 백석 시인의 심경을 헤아려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현실에 순응할지 저항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절망적인 현실이 아니라 희망적인 미래를 내다보고 행동하는 일이 주는 기쁨이었다. 세상에 만연한 절망을 행위의 근거로 삼았다면 백석 시인은 찬양 시를 썼을 것이고 시인으로서의 생명력도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시인으로서 살아온 인생과 철학, 숭고한 책임 등에 비추어 현재 이후의 먼 미래를 내다봤다면 절필은 당연한 일이다. 역사적, 윤리적 당위에 비출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에 순간순간의 괴로움은 느낄지언정 세상을 향한 분노나 억울함에 갇히지는 않았을 거라는 것이 김연수 작가의 생각이며, 나 또한 동의하는 바이다. 당장의 고통에 연연하지 않고, 보다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미래를 상상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오펜하이머의 스승이 강조했고 오펜하이머가 지켜내고자 했던 ‘윤리적 상상력’이지 않을까.
당장의 현실성보다는 미래에 실현되어야 할 당위에 초점을 두려는 마음가짐에 주목하게 된다. 오펜하이머와 백석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암울한 시절에도 꿋꿋이 책임을 다하고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됐다. 검찰의 내부 비리를 고발하고 세상에 알리는 검사, 공명정대한 수사를 위해 윗선 개입을 단호히 거부한 해병대 수사단장, 그리고 각기 자신의 자리에서 권력의 외압에, 주변 분위기에 얼렁뚱땅 휩쓸리지 않고 시대적 양심을 지키는 사람들. 그 굳건한 마음들이, 미래에 지향을 둔 상상력과 용감한 실천이 조금 더 힘을 냈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