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eong Ellen Kwon Jul 21. 2022

객관이라는 허상

타인은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온전히 다른 세계다,

당신은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온전히 다른 세계다.


요즘 가장 자주 느끼는 것, 계속 상기하는 것 중의 하나는

사람들 각자가 인식하고, 판단하고, 영향받고, 반응하는 기준이 너무나도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심리 분석 도구나 기타 다양한 개념을 활용해 타인의 특성을 얼추 짐작해 보는 것을 사실 좋아했는데, 그게 너무나도 큰 기만이었다는 것을 자꾸 깨닫게 된다.


내가 타인에 대해 느끼고 판단하는 것은, 그 어떤 증명된 개념을 십분 활용한다 할지라도 결국 내 토대 위에서 그 사람을 보게 되는 것이고,

실제 그 사람의 내면세계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토대 위에 세워진 전혀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몇 가지 겉으로 보이는 요소만으로 짐작할 수 있는 무엇이 전혀 아니다.

설사 상대가 내 입장에서 판단하기에 너무 분명한 성격적 특성들을 보인다 해도, 시작부터 아예 잘못 짚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스무 살 때 처음 MBTI를 접하고 아! 사람은 정말 이렇게나 다른거구나를 느꼈던 순간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가, 아 타인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구나를 점차 알아간다. 우주와 다를 것이 없다.

수많은 성격 특성적, 심리 분석적 개념들을 접했지만, 그 모든 것을 조합해 적당히 객관화해볼 수 있는 인간이란 없다.

평생을 깊이 알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쩌면 나는 그 사람의 본질과 전혀 다른 나만의 해석을 해왔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게 우리가 갇혀있는 가장 내면의 감옥일지도 모른다.

자아와 너무 맞닿아있어 인식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그래서 어쩌면 큰 잘못도 아닌.


따라서 그저 직관을 통해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는 나 자신만이, 유일한 진실일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내가 이럴까? 라며 틈날 때 슬쩍 기웃거리지만 이미 친근한 나의 조각들만이.




내가 스스로의 자유를 박탈해버렸던 이유


난 어릴 적부터 생각이 정말 많았다.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생각하고, 주체할 수 없이 퍼져나가는 생각들을 온 벽에 다 적어두곤 했다(정리는 잘 못했다, 아주 못했다).

당연히 스스로에 대해서도 많이 돌아보며, 과할 정도로 모든 것들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하며 살았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건 다 내 기준에서 만이었을까? 그저 내 세계에만 푹 빠져있었던 것일까?


이십 대 중반쯤까지는 그 덕을 봐서인지 제 멋대로 거칠 것 없이 나아갔고, 별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내가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세상 속의, 사회 속의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억울한 기분에 종종 시달렸다.

한마디로 자기 객관화가 부족한 인간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았는데? 

어쩌면 그런 재능이 처음부터 결핍되어 있는 것만 같았고, 그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럼 내가 그동안 생각해 온 것은, 펼쳐온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현실에 존재하긴 하는가? 나는 왜 늘 거울 속의 내가 낯설까?


스스로가 눈치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걱정에 과하게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어디서든 손과 발이 바빴다. 과하게 움직이는 것이 눈치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늘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지만 그만큼 이상한 사람이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럴 용기는 없었기에, 그만큼이나 자기애가 강하지는 못했기에, 혹여나 그래 왔다면 적어도 그걸 유지하지 못했기에.

때로는 내가 어딘가에 자리한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수치스럽게 느껴지는 순간들을 이겨내기 위해, 차라리 그림자가 되려 애쓴 적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싶은 욕망이 강해졌다.

언제까지나 내가 어떻게 비칠지 노심초사하며 눈치만 보고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자아 성찰과 탐구, 세상에 대한 호기심,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욕심에서 쌓아온 주관적 사유는 더 이상 당당하게 삶을 펼쳐가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겐 이제 객관화된 나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절박하게 필요했다그걸 알아야 거기서부터 시작해 고칠 것들을 고쳐 그럴싸한 나를 만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고 주관적인 나로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다시 예전처럼, 제 멋대로, 거침없이.

그러나 그렇게 살아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아도 될 정도의 무언가를 더 갖추기.

내 모든 태도와 행동 뒤에 뒤따를 판단들로부터 안전하고, 자유롭고 싶었다.

그렇기에 기본 값을 다시 세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자유의 시작이 아닌, 자유의 끝이었다.




'개개인은 별개의 우주이며, 나는 모든 우주로부터 이해받거나 포용될 수 없다'는

이 작은 깨달음이 다시 자유의 시작이 되어줄까?


나는 왜 이 과정을 거쳐야만 했을까?

사실 누구나 철이 들어가며 거치는 과정인지 모른다. 나라고 좀 유난한 것일까?


고의도 악의도 아니었던 나의 태도와 행동들이 누군가에겐 너무 가벼웠고, 누군가에겐 너무 경솔했고, 누군가에겐 너무 부담스러웠으며,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또 누군가에겐 피해가 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어떤 계기로 인해 너무 늦게나마 인지하게 되었을 때.

그건 일종의 폭풍과 같았고, 스스로 안에서 꾸준히 일어오던 크고 작은 바람들과 함께 나를 덮쳤다.

스스로 가지고 있던 나에 대한 의혹들이 이와 함께 모두 현실이 되어 다가온 것이다.

나는 실제로 약간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것만 같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나는 내가 가증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마침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 돌아와 있던 참이었다.

그것 만으로도 나는 이미 감옥에 있었지만, 도망칠 곳도, 이미 온전히 숨을 곳도 없었지만,

진짜 감옥에 다녀와 내가 사람들에게 줘온 모든 상처를 없앨 수만 있다면, 그들의 기억 속에서 가볍게 나풀거리는 나를 지울 수만 있다면 정말 진심으로 그러고 싶었다.


무의식이 반영되었는지 결과적으로 나는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스스로를 마음속 감옥에 가두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감옥살이였지만, 그 외에는 도무지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시간 동안 해낸 것이라곤 난생 거의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에 꾸준히 다녔다는 것인데(내가 이렇게 긴 시간 버텨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변인들이 많이 놀랐다), 사실 회사를 다니면서 자괴감은 더욱 심해졌다.

직장인들은 예상과 다르게 다정하고 섬세했으며, 유능하고 유려했다. 남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했던 나는 그저 사회성이 결여된 특징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 나는 혹시 내 생각보다 더 엉망인 것은 아닐까.


나답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좌절감, 게다가 나답게 살아왔던 지난 순간들의 부족함까지 하나하나 직면해가는 매 순간의 불안은 수많은 생각들을 낳았다. 나는 그것들을 놓치면 안 된다고, 그 안에 나를 해방시킬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더미에 파묻혀 하루하루를 보냈다.

처리하지 못할 숙제를 매일같이, 마치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대책 없이 쌓아가며 발목에는 무거운 추를 달았다. 나는 단 한순간도 가볍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객관적으로 나를 파악했다고 여겨지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섣불리 행동해 또 다른 실수를 만들어내고 싶지 않았기에 강박적인 시간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수감 기간은 계속 자의적으로 연장되었다.

나는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도 어떻게 지내냐는 이야기에 답할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나의 삶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았다.


나는 이 생각 더미가 그나마 앞으로의 나를 받쳐줄 작은 흙더미가 되어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뿌리 없는 나무처럼, 지금까지의 나처럼. 무엇으로부터도 나를 지킬 힘을 기르지 못하고 그저 휘날리는 느낌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마침내 두려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그 긴 시간을 버텼음에도 온전한 흙더미를 만들지 못했고, 어쩌면 아직도 감옥에 있지만,

마음속에 조그마한 씨앗 몇 개는 심어 두고 서서히 석방을 준비하는 중이다.

하나 성공적인 부분은 남들은 어쩌면 포기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을 나는 기꺼이 용기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점. 나는 발목에서 추를 떼었고, 다시 가벼워질 용기를 내기 시작했고,

나풀거리는 나를 전처럼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깨어있기로.


나는 모두의 우주로부터 이해받거나 포용될 수 없다.

나는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온전히 다른 세계다.

나는 객관화될 수 없다.


나는 자유.




글이 많이 부족하고 모자랍니다.

그럼에도 문득 글을 올리게 된 건, 더 이상 불안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마음을 정착할 곳이 절실했습니다.


명상이 좋다고도 하고, 일기 쓰기가 좋다고도 하더라고요.

일단은 뭐라도 써서 올려보자 하는 결심에 후다닥 글을 써 포스팅을 해 봅니다.


여기가 제 작은 흙더미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전 05화 오래된 좌절감이 머물고 자라나 온 곳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