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eong Ellen Kwon Jul 05. 2023

분명해지기 위해 살아가는가?

 2년 전쯤 우연찮게 연속해서 두 번이나 TCI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다른 지표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자극추구 성향이 상위 1%, 4%로 높게 나왔다. 5대 성격유형 검사에서는 개방성과 신경성이 거의 만점에 가까울 만큼 높게 나왔다. MBTI는 INFP와 INTP가 번갈아 나온다. 에니어그램 유형은 비밀이다.


 재미로 보는 심리테스트는 좋아하지 않지만 위와 같이 오랫동안 검증된 어떤 논리에 따라 나의 성향을 이루는 요소들을 단어로 이해하고 그 수치 등을 대략 측정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다는 필요로 하는 편이다(그중 에니어그램을 가장 좋아하고 오랫동안 공부해 오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어떠한 것에 대한 개념을 쉽게 정의하지 못하고 나름대로 최대한의 경험과 지식을 모아 통찰해 내기까지 무한히 그 가능성을 열어두는 편이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이유가 되는지는 아래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려 한다.


 나는 기존에 이미 정의된 개념이나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싫어하고(아주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지 않았고), 따라서 나의 어떠한 것에 대한 개념이나 방식이 다른 이들의 그것과는 사뭇 달라 오해를 사고는 뒤늦게 당황했던 경험이 꽤 많다(이 조차도 나이가 들어가며 조금씩 인식하게 되었다). 물론 그전에 스스로 매우 불편하다. 많은 것들에 대한 개념이 내 속에는 아직 불분명한 상태로, 활짝 열려있는 상태로 존재한다. 분명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 자연스레 자극과 정보에 매우 민감해지고 더 많은 재료, 경험을 갈구하게 되며, 잘 흔들리고 영향받고, 무엇보다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토대 위에서 이야기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매 순간 의심, 검열하게 된다.

 안 그래도 불안을 친구 삼아 사는 나는 어서 많은 것들이 내 안에서 통찰을 마치고 정의된 나, 나의 정체성, 나의 태도를 가지고 세상과 대면하고 싶다. 그렇지만 영원히 살지 않는 한 그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삶의 과정에서 내가 해온 실수들에 매번 이렇게 주저앉아서는 진짜 삶은 계속 미루게만 될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실제로 그래왔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일부라도 객관화할 수 있는 지표, 수 없이 많은 시간 동안의 탐색과 고뇌를 통해서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의심 위에서는 도무지 메타인지를 키울 수) 없는 나를 조금이라도 안정시켜 세상에 이미 정의된 개념을 참고해 교류할 수 있게 해주는, 때로는 비추어 볼 거울이 되어줄 수 있는 도구들을 필요로 한다. 그것들은 내가 아니지만 쪼개지고 복사되어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조각들과도 같다. 이 조각들을 통해 나는 조금씩이나마 내 안의 추상적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아주 조금씩 지금 상태의 나로 세상에 나아가도 괜찮다는 용기를 얻는다. 어떤 것들은 아주 쉽게 정의해도 되며 또한 어떤 것들은 아예 정의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내부는 추상적이며 무한히 열려있고, 내가 외부를 다루는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복잡한 것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그것들이 분명해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복잡해지는 속도를 분명함이 따라잡는 것이 쉽지 않아 오랜 기간 엎치락뒤치락하다 많은 것들을 놓쳐버린 것이 사실이다. 나는 그저 분명해지기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여러 번 주저앉았다.

 그렇게 나의 안팎은 온통 무질서하며 (절실히 노력함에도) 정돈될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가 이해하고 정의하고 싶은 그 무엇도 사실 분명해지기 쉽지 않다. 나는 어쩌면 평생 모든 것을 열어두고 세상엔 없을 답을 찾아 헤매는, 애초에 답을 찾고자 하는 목적 따위는 없는, 그저 찾아 헤매는 그 과정에 온 의미를 두고는 바로 그것이 인생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전 06화 객관이라는 허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