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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eong Ellen Kwon Aug 17. 2023

튀어야 산다, 뛰어야 산다

 


 튀어야 산다. 12년 전 만들었던 첫 단편 다큐멘터리의 제목이다.


 늘 특별하고 싶었지만 그 특별함을 외적으로 표출하려 노력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나의 특별함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꽁꽁 움켜쥐고 내 안에서 소중히 키워가며 살았다. 그리고 사실 위 다큐멘터리의 제목에 담긴 ‘튀다’라는 단어는 특이하다, 눈에 띈다, 때론 특별하다 등의 뜻으로 쓰이는 그 튀다가 아니다. 여기서의 ‘튀다’는 달려 나가다, 달아나다, 도망치다의 의미를 훨씬 많이 포함하고 있다.


 나의 마음은 항상 지금에, 이곳에 있지 못했다. 20대까지는 내가 무언가를 쫓아, 무언가를 향해 달려 나가는 모양새였지만 언젠가부터는 오히려 무언가로부터 쫓겨 절박하게 도망치는 모양새에 가까워졌다. 설렘을 찾는 것도 쉬웠고 그것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이 신나기만 했던 시절, 스스로 나의 찬란하지만 미숙했던 도전을 평가하고 자책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그 도전에 손가락질하는 이들이 생기고, 스스로 그 설렘에 무거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길을 좁히고 그저 환하게 빛나던 먼 이상이 어렴풋이나마 실루엣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아주 이상하게도 그 대각선 어디쯤으로 방향을 틀고는 사방을 정신없이 훑어보며 휘적휘적 맴돌듯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건 꽤 필사적이어서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조차 “넌 무언가를 굉장히 절실히 쫓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와 같은 류의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이런 에피소드를 들은 상담사 선생님은 “절박해 보이는 게 당연하죠, 쫓는 게 아니라 쫓기고 있었으니까. ”라며 내 상황을 일축해 주셨다.


 달려 나가든, 달아나든 내 마음은 항상 달리고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운동회 100미터 달리기에서 6명 중 5등 정도를 도맡아 했고 딱 한번, 엄마가 도착 지점에서 활짝 웃으며 팔 벌려 내 이름을 부르고 계실 때 3등을 해 보았다. 나는 달리기를 못하고, 내 몸은 실제로 달리는 상태에 있던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나는 교과서에 습관적으로 달리는 사람의 다리를 그려 넣었다. 상체도 없는 그저 다리와 신발로 이루어진 그림이었다. 수업이 지루해 딴생각에 잠길 때면 습관적으로 달리는 사람의 다리를 교과서 곳곳에 그려 넣었다. 어림 잡아 교과서 한 권당 500개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당시엔 별 의미가 없는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교과서에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을 때나 선생님의 말씀과 연관하여 궁금한 점이 생길 때마다 온갖 질문을 곳곳에 낙서처럼 적어두곤 했는데 그 글씨는 항상 오른쪽 위를 향해 뻗쳐 있었다. 그때, 내 교과서를 가만히 볼 때면 오른쪽 위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글씨와 물음표들, 그리고 왼쪽 위와 앞을 향해 한없이 달리고 있는 다리들로 가득 차 있어 장난스러웠고, 찬란했다. 거긴 어린 내가 아직 경험하지도, 해석하지도 않았던 순수한 열망들이 세상으로 달려 나가기 위한 눈을 반짝이고 있었더랬다.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달리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자주 혼란스러웠다. 겉으로는 달리고 있지만 머릿속의 작은 나는 달리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왕좌왕하고, 이리 찌르고 저리 찌르고, 방방 뛰다가, 드러누워 있기도 했다. 경로를 미리 살피고 방향을 조절해야 할 컨트롤 타워의 책임자는 현명하지 못했다. 아예 다른 길로 가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험하고 흥미로워 보이는 길이 있으면 바로 방향을 틀었고, 종종 길이 아예 없는 곳으로 갔다. 저 끝에 무언가가 있다고 분명히 믿었던 적도 있었지만, 언젠가부터는 저 끝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향을 틀었다. 금세, 좌절은 습관이 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었다. 그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실패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불안은 현재를 잠식했고, 나는 과거나 미래로 자꾸만 눈을 돌렸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지금부터 나를 지나치는 모든 것들을 붙잡으려 했고, 과거에 대한 두려움에 지나온 길들은 차마 되돌아보지 못했다. 나는 뿌리 없는 나무가 된 것 같았다. 그토록 온 마음과 몸을 다해 쌓아 온 경험들은 아주 좋은 비료가 되어줄지언정 뿌리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나는 내가 장독대 같다고도 생각했다. 정말 많은 것들을 담아왔고, 오랫동안 품고 있었지만 열어보는 것이 두려웠고, 그건 그저 땅 속에 묻혀 점점 깊이 가라앉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곧 찾을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엄마는 어느 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튼튼하고 진귀한 재료들을 한가득 쌓아놓고 있어. 그 누구보다도 많이. 그러나 그 재료들로 어서 집을 짓지 않으면 그것들은 금세 녹슬거나 썩어버리고 말 거야. ”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든 시간이 두려웠다. 또한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두려웠지만, 저곳으로 간다고 해도 다시 좌절이 찾아올 것임을 알았다. 나는 시공간에 갇혀 옴짤 달싹 못하고 있는 셈이었다. 우주선과의 연결도, 지구와의 교신도 끊겨 미아가 된 우주인처럼. 이왕이면 아주 멀고 먼, 지구에서 한 번도 관측된 적 없는 낯설고 찬란한 우주 한가운데서 미아가 될 수 있다면 좋았으련만. 마침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나는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서 3년 남짓한 기간 동안의 이야기는 이 책(머묾에 대하여)을 쓰게 된 동기이자 주제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는 좀 자세히 해야 할 것 같아서 다음 기회에 써보아야겠다. 달려 나가지도, 달아나지도 않고 한 곳에 오래 머물었던 경험은 내게는 진귀한 것이어서, 알게 모르게 조금은 무의식적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진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머릿속의 나를 현실에 존재하는 나와 연결시켜 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실제로 달리기도 시작했다.

 하루에 5km 정도를 뛰다가 한 달 전쯤부터는 일주일에 3~4번, 한 번에 10km를 뛰고 있는데 1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달리고 나면 오늘 하루도 살았다는 기분이 든다. 그 무엇을 하건, 해내건, 아무것도 하지 못했건, 오늘 하루를 나는 살았다, 달렸다, 여기에 숨 쉬고 여기에 있었다.


 내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자체가 이토록 가치 있는 일인 줄은, 나는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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