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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eong Ellen Kwon Aug 28. 2023

내게 완성이라는 것의 의미

  유치원부터 초등학생 때까지는 그림 그리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첫 기억이 있을 무렵부터의 나는 어딜 가든 늘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손에 들고 다녔고(그러다 무거워지면 할아버지에게 들어달라고 맡겨버렸다. 할아버지는 물놀이하러 간 휴가지에서 조차 내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들고 다니셔야 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해의 막내삼촌 생일 때 아끼는 새로 산 48색 크레파스를 생일 선물로 주면서 느꼈던 그 아주 복잡한 감정(내게 소중한 물건을 자진하여 누군가에게 선물로 줄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된 내가 꼭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 + 자진한 것임에도 이 소중한 크레파스를 누군가에게 주어야 하는 슬픔과 억울함 + 삼촌이 이 선물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는 데서 오는 의아함과 공허함과 기대감(삼촌이 혹시 다시 내게 돌려주려나?))도 기억난다. 매해 봄마다 열리던 수많은 그림 그리기 대회에 연례행사처럼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소풍 가듯 다녔고, 상을 자주 타긴 했지만(그렇게 열심히 다녔으니) 상을 타지 못했을 때 느꼈던 두려움(설마 내가 최고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닌 건가!)도 생생하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시간의 대부분은 책을 읽으며 보냈다. 엄마는 아주 어릴 적의 내가 너무도 책을 읽어달라 조르는 통에 지쳐 좀 이른 나이에 한글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매주 한 권씩 동네 책방에 가 내가 고르는 책을 사주셨는데 방 하나가 온통 빽빽하게 책으로 가득 차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책을 사는 속도는 읽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온종일 읽어대니),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 외에도 같은 책을 몇 번이고 계속 읽다 친척집이나 친구집에서 새로운 책으로 가득한 책장을 볼 때면 그곳이 천국이었다. 책장을 올려다보며 그 기쁘고 설레었던 마음이 생생하다. 외할머니 댁 주방의 식탁 아래서 읽었던 수많은 책들, 사촌 동생 방의 위인 전집 중 낯선 이름의 아문센 편을 골라 읽다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내 안의 무언가가 깨어났던 기억도.


 책을 너무 좋아했으니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특히 시 쓰는 걸 좋아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내가 썼던 시 하나를 그림과 함께 꾸며 교과서 표지를 쌌던 적이 있었는데, 이걸 보신 국어 교생 선생님께서 복도로 나를 불러내 두 손을 꼭 잡으며 칭찬해 주셨다. 내가 짝사랑하던 선생님이 내 시를 좋아해 주시다니, 이런 우연이라니, 우리 사이에 뭔가 통하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닐까? 선생님이 교생 실습 기간이 끝나시면 어떻게 연락을 이어가야 하나? 선생님의 나이도, 얼굴도, 그때 입고 계시던 옷도, 나를 봐주시던 표정도 모두 선명하다.


 책에 대한 애정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자부심은 학창 시절을 넘어 대학생이 된 이후까지도 이어졌지만, 그 자체가 나의 정체성이나 꿈과 크게 연관되지 않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내 삶에서 차지하는 빈도도 낮아졌다. 나는 여전히 탐색과 창작을 내가 삶을 대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이라 여기지만 주로 사용하는 도구는 변해왔다. 책을 통해 세상을 탐색하던 나는 직접 세계로 나가 돌아보느라 분주해졌고, 글을 통해 통찰하고 창작하던 나는 즉각적이며 눈에 보이는, 움직이는 것들을 통해 표현하는 데서 더 큰 재미와 의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여전히 어딜 가든 가방 속에 늘 책 한 권은 들어있었고 어디엔가에는 조금씩 끄적이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점차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었다.




 오랜만이더라도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것은 쉬웠다. 재작년 겨울, 버스 정류장 구조물 위에 내려앉은 눈송이들을 곰곰이 보니 그 형태들이 아주 뚜렷하게 보였더랬다. 그 뒤로도 며칠 동안 계속 눈이 왔는데 운이 좋으면 좀 어두운 배경의 구조물, 담장 같은 곳들에서 크기도 크고, 형태가 아주 선명한 눈송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들을 보고 있는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는데, 온갖 건전한 쾌감이 눈을 통해 하염없이 밀려드는 것만 같았다. 나는 전 세계의 예쁜 눈송이들을 찾아 헤매는 눈송이 탐험가가 되면 어떨까 하고도 생각했다.

 그 뒤 며칠에 걸쳐 틈틈이 작은 스케치북 위에 볼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다양한 형태의 눈송이가 도시 위로 내리는 그림이었다. 도시의 모습을 그리다 보니 그게 또 재미있어 뒤이어 내가 좋아하는 도시의 풍경 몇 개를 그렸다. 스케치북과 펜 하나를 가지고 방 안에서, 그리고 종종 카페에 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들이 그렇게도 평화롭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펜 끝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나는 그 끝을 통해 깊은 땅, 지구와 연결된 듯한 안정감을 느꼈다.


 책을 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책보다는 출판물이라고 좀 더 넓게 분류하는 것이 맞을지도), 재작년 겨울. 서울 독립 출판 페어에 갔다가 정말 다양한 형태(한계 없는)를 가진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내용의 독립 출판물들을 보며 나도 무언가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강하게 지배당했더랬다. 뭔가 대단한 걸 담아내는 게 아니더라도 그저 창의력을 한껏 발휘해 무지개 빛깔을 띤 무엇, 나조차도 한 번에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도 밀도 있게 산만한, 그래서 매력적인 무엇을 하나 만들어 손에 쥐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많은 것, 모든 것이 아닌 내 안의 아무런 단 한 조각을 꺼내어 불완전하게 담아보더라도 그저 손에 쥔 그 자체, 눈에 보이는 그 자체로 적어도 내겐 가치를 지닐 무엇, 그런 것.

 그렇게 거꾸로, 나의 책을 내겠다는 결심은 그 내면이 아닌 표면으로부터 비롯되었다(당장은 아니고 두, 세 계절쯤 지나 한 번의 독립 출판 페어에 더 다녀온 뒤부터). 리소 프린팅이라는 인쇄 방식과 다양한 종이의 매력에 빠져 무엇을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종이를 먼저 만져보러 다녔고, 준비된 원고는커녕 기획도 없이 독립 출판 워크숍 과정에 덜컥 등록해 매주 한 번씩 나가기 시작했다. 다들 준비된 원고를 편집하고 책을 인쇄하는 과정이었는데 나 혼자 그 가운데에서 정돈되지 않은 생각들을 툭툭 꺼내어보다가 두 번째 시간에는 그냥 단순하고 자연스럽게도 나의 그림들(아직 몇 작품 되지도 않았던), 그리고 그 그림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글들을 담은 작은 책자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발표했고, 넷째 주 마지막 시간, 다들 인쇄된 책을 한부씩 가지고 와 발표할 때에는 전날 하루종일 오리고 붙여가며 만든 책 표지를 가지고 갔다.


 그 사이 언제쯤 난 용기를 내 1년간 한국에 더 머물기로 결심한 뒤 서울로 이사를 했던 참이었고, 나만의 공간에서 계속 스케치북에 펜으로 그림을 그리며 틈틈이 2절지에 그 과정을 담은 콜라주 작업을 해보기도 했다. 작년 겨울 회사를 그만둔 뒤부터는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방안에 처박혀 온갖 물감과 재료들을 늘어놓은 채 2~3일에 하나씩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그건 내겐 거의 완벽한 치유였다. 불안이 없는 완전함, 완벽한 불균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나의 산만함에 방해받지 않고 어떤 깊이에 도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은 너무나 다양했고(또 다른 재료를 찾아 나서는 길은 늘 행복했고) 내게는 표현하고 싶은 그간 쌓인, 그리고 매일 새로 생겨나는 주제와 영감들이 가득했다. 만들고 그리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시간과 에너지에 한계가 있을 뿐인 상태도 완전함이라는 단어와 어울렸다. 하루도 온전히 집에 붙어있던 날이 거의 없던 나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로 반강제적으로 종일 집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게 괴롭지도 않았다. 하루치의 외출이 이른 아침 메가커피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뽑아오는 것으로 충분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그림이 어느 정도 쌓이면 그림에 대한 설명글과 함께 작게 책자로 만들어봐야겠다 생각했던걸 잊지는 않고 있었지만 대략 글을 어떤 식으로 얼마만큼 담을지는 정해둔 바가 없었다.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출판물에는 그림이고 글이고 그저 분류 없이 그저 현란한 형태로만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막상 그림을 계속 그리다 보니 그 속에 한껏 함축해 담은 것들을 다시 끄집어 내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단순하고 친절하게 핵심만 적어보자니 멋이 없고, 한번 그림으로 그려낸 주제에 대해 다시 깊게 생각해 긴 글을 써보자니 재미가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림으로 다루었건, 미처 다루지 못했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주제들에 대해 그림과는 별개로 따로 글을 쓴 뒤 그림과의 어느 정도 연관성을 찾아(찾지 못해도 상관은 없다) 함께 싣거나 하는 방식이 가장 적당할 듯했고, 그렇게 그림으로 표현하던 내 공간에서의 시간은 점차 글로 표현하는 시간으로 자연스레 옮겨갔다.

 


 생각이 너무 많아 종일 시달리는 내게 각 잡고 글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건 이미 자명했다(몇 달이 성과 없이 흘렀다). 그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그 가운데서 마땅한 주제를 뽑아내야 하는, 즉 두 번의 과정을 더 거쳐야 하는 고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새로운 생각의 물살에 매 순간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으니, 그 생각들을 제대로 살필 여유가 없어왔던 게 당연했다). 그렇게 간신히 글 쓰기를 시작한 후엔 또 어떤가. 그저 연상되고 지향되는 무형의 것들을 죄다 붙잡아 담다가 마치 내 인생처럼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내 머릿속은 체계라곤 없는 유달리 추상적인, 그저 계속 확장되어 온 우주이고 그래서 나는 그 세계의 일부를 직관적으로 어렵지 않게 캔버스엔 옮길 수 있었지만, 글로 옮기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많은 노력, 그리고 멈춰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까? 사주를 볼 때 선생님께서 난 좀 실속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었는데 난 또다시 실속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래도, 지금이 바로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걸러내어 글로 남겨보기에 가장 적당한 시기인 것은 틀림없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경험해 온 많은 것들도 위와 같은 핑계로 그간 착실히 허공으로 날려 보내왔던 게 아닌가? 정신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적어도 나의 몸은 나의 공간에 잔잔히 머물고 있는 시기이니, 간신히 그 땅에 의지해 무언가를 붙잡고 서서 빠른 물살을 버텨볼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잠시간은 나의 정신이, 고인 물에서 물장구를 좀 쳐볼 수 있는 여지를 가질 수도 있다.


 사실 이번 봄에 걸었던 제주도 올레길에서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었다. 지난 삶을 되짚어 보면 많은 문제들의 원인은 바로 내가 너무 쉽게 시작하고 너무 어렵게(드물게) 완성한다에 있었고, 스스로 지금까지의 자신을 실패했다고 결단한 이유도, 내가 괴롭히고 나를 괴롭혀온 많은 것들도 바로 그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나의 오래된 좌절감도 마찬가지다.

 난 시작을 아주 쉽게 진취적으로 하지만, 완성해서 결과를 보는 경우가 꽤 드물었다. 거기에 사람이 연관되어 있는 경우라면 그나마 좀 나았지만, 종종 그 사람들에게도 무책임함, 배신감이라는 상처를 주기 시작하면서 나의 마음도 함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 나를 망친 것은 당연하고 이젠 세상도 나를 비난하고 공격할 거라는 과장된 불안에 늘 떨어왔는데, 혼자 착실히 지어온 감옥에 갇혀있는 나는 언제 출소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공포감에 차라리 진짜 감옥에라도 다녀와 내 지난 모든 실수와 잘못이 씻겨나갈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랬다.

 그러다 그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금씩이나마 실수를 바로잡으면서, 운동을 시작하면서, 찬찬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대화와 공부를 이어가면서 나는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 무엇도 완전하지는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다만 다시 오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몇 가지 원칙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올레길에서 한 결심은 완성에 대한 것이었다. 앞으로는 그 무엇이 되었건 시작했으면 완성을 하겠다는 것. 난 생각을 많이 하고 계획도 많이 세우고 상상도, 다짐도 많이 하지만 어떤 원칙을 세우고, 내 안에서 법을 제정하는 일에는 취약했기에 이건 아주 오랜만에 분명히 세운 나의 원칙이었다. 그 어떤 예외의 경우도 두지 않고, 그 어떤 융통성도 발휘해선 안된다는 조건이 첨부된 강렬한 법. 스스로 단단히 세운 무언가가 내 마음속에 자리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중심축의 역할을 해 더 넓은 궤도에 안정적으로 이를 수 있게 하는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언젠가, 나와 깊은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오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네 안에는 검사가 너무 힘이 강하고 변호사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너는 네 자신을 너무 가혹하게 검열하고 판단한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안에는 변호사만 없었던 게 아니다. 법정은 크게 자리하고 있었지만 애초에 원칙을 세우고 법을 제정하는 입법 기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법전이 있었다 할지라도, 세상을 경험하고 관찰하며 기준을 적절히 반영하여 새로운 법들을 제정해 가야 하는 기능이 도태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땅한 법전도 없는 법정에서 죄수인 나는 처음엔 멋모르고 안심한 채 까불다가 가혹한 검사에게 걸려 된통 심문을 당하고 있어 온 지 오래였다.

 가지고 태어난 오래된 법전을 너무 믿었다는 것, 동시에 세상의 소리를 넓게 듣기 위해 입법기관인 국회의사당의 문을 너무나도 활짝 열어두었었다는 것. 그 무엇도 제대로 판단되고 그 어떤 법도 제대로 제정될 수 없는 상태에서의 혼란, 그저 힘이 센 자가 이길 수밖에 없었던 법정. 오히려 변호사보다 검사의 힘이 훨씬 강력해져 왔음에 다행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내게 글쓰기란, 이 작은 책을 만드는 작업이란, 어떻게든 완성하기 위한 과정이란, 사실 나를 내 안의 법정에 세우지 않기 위한 간절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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