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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렌의 가을 Dec 24. 2018

성탄 전야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a (very) short story

written by 엘렌의 가



그녀는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카드 만드는 것을 참 좋아했다고 기억한다. 주고 싶은 친구들의 목록을 만들고, 어떤 카드를 누구에게 줄지 고민하고, 전하고 싶은 말을 쓴다. 특별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확히 무슨 뜻인 줄도 모르고 노래하듯 말했던 '메리 크리스마스'로 마치는 카드들.


그러던 어느 날, 긴 세월을 거쳐,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신경조차 쓰지 못할 만큼 삶이 정신없어지는 때가, 그녀에게도 찾아왔다. 그녀는 연말의 길거리를 웃으며 걸어가는 TV 속 사람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았다. 캐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 말하자면, 그녀는 무의미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허덕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라고 별다를 것이 없었다.


크리스마스이브, 그녀는 일찍 잠들어 버렸다.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가 이 시끄럽고 번잡스러운 날을 어서 지나가 버리고 싶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음 날 잠이 깨면 특별하지 않은 그저 그런 날이기를 바랐다. 그때 그녀는 자기 자신 또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다음 날 아침, 그녀가 일어났을 때 -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 하얀 눈이 온통 세상을 덮고 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니. 아주 오랜만에 맞는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였지만 역시 그녀는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다 그녀의 눈길은 창가에 걸린 장식들에 멈추었다. 이게 뭐지?


어제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아무 장식도 없던 창이었다. 그런데 지금 거기에는 반짝이는 작은 종, 눈사람, 금색 별, 산타 장식이 걸려 있었다. 장식용 램프가 깜빡였다.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그녀에게 슬며시 아이가 다가왔다. 아이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밤에 달았어요. 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


그 순간 비로소, 함께 그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아이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 그녀가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은 사이, 특별할 것 없는 저녁을 아이는 먹었을 것이다. 적막한 집의 거실에서 혼자 '크리스마스용 물품'이라는 라벨이 붙은 상자를 찾아 꺼내고, 그 안에 복잡하게 얽혀 있던 전선을 풀어, 서툰 손으로 램프가 달린 전선을 걸었을 밤. 아이는 불이 켜졌을 때 웃었을까?


그 해, 그녀는 크리스마스가 아무 의미도 없다고 여겼지만, 아이에게는 크리스마스야말로 가장 필요한 것인지 몰랐다. 작더라도 불빛이 될 수 있는 무언가, 집의 적막과 고요함 속에서 삶을 반짝이게 하는 순간으로 만들 계기 같은 것. 우리가 아직은 괜찮고, 우리 삶을 아끼고 있으며, 축하할 수 있다는 작은 증거. 아무리 그것이 상투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시늉이라 할지라도, 행복의 느낌 같은 것이, 아이에게는 간절히 필요했다. 다만 버티고 나아가기 위해서. 소망을 가져보기 위해서.


좋아질 거야 - 이것은 누구보다도 그녀 스스로 절박하게 원했던 말이었다. 그토록 말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말을, 어설프게 늘어뜨려진 램프가 리듬에 맞춰 깜빡이며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아이를 쳐다보았다.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중요한 존재가, 삶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것은 위로도, 기대도, 거짓도 아니었다. 아니, 더 이상 그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성탄 전야, 해가 지기 시작하고 밤이 찾아오면, 그 밤은 더 이상 전날의 밤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녀는 믿기로 했다. 오늘의 아침은 이전까지의 모든 아침을 떠나는 것이라고. 그녀는 동그란 아이의 어깨를 품에 끌어안았다.




후기:

너무 오랜만에 글을 올리게 되어 미안합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올해 12월 24일,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제가 드리는 작은 성탄 선물로 읽힌다면 좋겠습니다.

bitterSweet life + fiction/story by 엘렌의 가을


"Someday soon we all will be together if the fates allow

언젠가 곧 우리는 모두 만날 거예요 운명이 허락한다면

Until then we'll have to muddle through somehow

그때까지 어떻게든 해 나가 봐요

So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now

그러니 지금은, 작지만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요"


모두들,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https://www.youtube.com/watch?v=p_492QH-V7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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